[정재영 칼럼] 땅 끝에서 선교 현장을 돌아보며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등록일:2019-07-03 09: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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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선교지 방문
 ▲정재영 교수


지난 2주간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인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선교지를 방문하고 강의를 하였다. 한국과 시차도 꼭 12시간이고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구 반대편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선교지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은 한국 교회에서나 선교지에서나 건물 중심의 사역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필자가 속한 학교 차원에서 강의를 통해 교육선교를 하고자 기획한 것이었다. 선교지에서의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처음 경험하는 이국이기도 하거니와 자칫 방문자의 경솔한 행동이 오랫동안 선교현장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애써온 선교 사역자들에게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세미나를 할 때 보면 간혹 세계적인 학자를 초청해놓고 아주 지엽적인 자기 교회 상황에 대해 질문할 때가 있다. 목회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대가에게 혜안을 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가라도 그 교회가 갖는 특수한 사정을 모르고, 특히 한국교회의 특수성을 모르고 단박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정답을 제시해주기는 어렵다. 이것은 선교현장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한국의 선교사나 목회자 또는 학자들이 선교지에 와서 한국식 신앙이나 교회를 이식하듯이 가르치려고 한다면 한국과는 상황이 전혀 다른 선교지 현장에는 잘 맞지 않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의 경험이나 연구가 만국공통의 진리인 듯 주입하려고 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없거니와 큰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또한 선교지에서 필자가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강의할 때 갖는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철저하게 상황에 근거한 학문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나 교회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 현지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다만 이론적 원리나 접근방법이 참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현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을 때 다행히도 현지 목회자들이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아르헨티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이곳의 현지 목회자들은 정규 신학교를 나온 경우가 많지 않아서 학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뜨거웠고,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다.
 
남미 선교의 어려움

선교사들이 말하는 남미 선교의 어려운 점은,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후원 또는 파송 선교사의 사역지를 보고싶어 하는데 비행 시간만 24시간이 넘고 시차 적응도 어려워서 여간해선 한번 방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예 후원이나 파송을 꺼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동남아시아에 선교 사역이 편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교 사역의 효율성과 파송 교회와의 협력 사역을 위해서도 이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땅 끝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이들이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2주간의 선교지 탐방으로 현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아르헨티나에 비해 브라질이 더 상황이 열악해 보였다. 상파울루의 한인 타운이 형성된 봉 헤찌로라는 서민촌 반경 2~3킬로미터 안에 교회가 56개나 있는데 거의 모두 기존 교회들이 갈라져서 생긴 교회들이라고 한다. 교인들은 이 교회 저 교회 옮겨다니기 일쑤이고 목회자와의 관계도 한국 같지 않고 좋지 않아 보였다. 위계적인 질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목회자로서의 권위가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사역들이 한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브라질 현지인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관광지로 유명한 리우 데 자네이루에는 한인 교회가 한 곳밖에 없다. 한인이 많지 않고 그나마 최근에 많이 줄어든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지인 대상의 사역이라면 한인 수의 증감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인 선교사들과의 동역이 어려워 선교사나 목회자들이 오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근에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으로 선교 기회도 많아지고 있지만 전문 사역자가 부족해서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상파울루에는 한국 뉴스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마약소굴에 들어가서 빈민 사역을 하는 귀한 선교사도 만났지만 이러한 사역이 브라질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사립학교를 나오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 들어갈 수 없는 서민들이 한 달 월급 이상 하는 학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엘리트층을 변화시키는 사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서민들이 많은 학비를 내지 않고 자녀들을 보낼 수 있는 사립학교가 세워진다면 작은 변화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문제는 거시적인 차원과 미시적인 차원 모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고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주변에 고통 당하는 이들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와 함께 이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이곳에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며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민 교회는 한국 교회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 이민자들의 삶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민 신자들로 구성되는 이민 교회도 마찬가지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모교회라는 인식이 없고 필요와 형편에 따라 교회를 쉽게 옮기기 때문에 교우 관계도 매우 유동적이고 파편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한인 사회가 좁기 때문에 사업 관계로 틀어졌을 때 서로 불편해져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이민 교회는 선교 역량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교 사역에서 개교회 중심의 사역이나 한인 교회 중심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개교회가 거창한 사역을 감당하려고 하거나 한인 교회끼리 대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하기 보다는 현지인 사역자 또는 현지인 교회와 연대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건물이나 프로그램 중심의 활동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백성이자 기독 시민으로 바로 세워 이들이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에서도 강조되듯이, 선교는 해외 선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교회가 스스로 터한 지역사회에서 보냄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선교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한국식 신앙을 주입하거나 이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교지의 많은 현지 사역자들이 한국 교회의 부흥 성장에 주목하고 이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적 성장 이면에 지금 한국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식의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나 왜곡된 신학을 전수하는 것에는 너무 많은 위험 요소가 있다. 따라서 현지 사역자들이 한국 교회의 장단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한국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내외국의 경계를 넘어 협력하고 연대할 때 진정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 가까이 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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