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식당 허드렛일, 다방보조, 술집 웨이터 보조…' 돈 되는 일은 다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받은 도움을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옮겨졌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도움의 손길이 커져 어느 새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자신을 발견했다. 안성우(68) 한라엠앤디 대표가 걸어온 지난 날의 이야기다.  
 
 ▲4일 서울 은평구 어느 카페에서 만난 안성우 대표.ⓒ데일리굿뉴스

"가난 딛고 타인 돕는 삶 살게됐죠"
 

"가난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밑바닥을 구르던 제가 남을 돕게 될 줄 몰랐습니다. 가난의 고통을 겪어봤고 그렇기에 주변의 어려운 이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안성우 대표는 그간 자신의 기부 활동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밝혔다. 안 대표는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1,952호 회원이다. 그동안 그는 빈곤층 아동 및 한 부모 가정 후원 등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나눔을 실천해왔다.
 
그 이유를 묻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라며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봤기에 남들의 어려움이 크게 다가오더라"고 운을 뗐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는다지만 안 대표의 어린 시절은 유독 어려웠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태어나 19세 때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가난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순전히 새 인생을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안 대표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가 농사지어 7남매를 먹여 살렸다"며 "아무리 애를 써도 빚은 자꾸 쌓이고 가정형편은 기울어져 갔다. 이렇게 계속 살다간 인생이 그대로 끝나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도망쳤다고 얘기했다.
 
큰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건만 그의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룸살롱 화장실 앞에서 물수건을 들고 기다리다 팁을 받아 생계를 잇는가 하면, 다방보조로 일하면서 눈치밥을 먹어야 했다. 절망스런 현실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쥐약 두 병을 들이켰다가 한 달간 눈이 먼 적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안 대표는 스물여섯 살에 수중에 가진 5,300원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이후 2년간 전국을 돌며 야채 노점상을 하다가 지인에게 빌린 500만원으로 부산 연산동에 6평짜리 슈퍼마켓을 차렸다. 이 가게는 25년 뒤 직영점 12개짜리 마트 법인이 됐다. 그는 "바닥생활을 하면서 생존본능이 강해졌다"며 "이것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밝혔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인생의 굴곡이 또 찾아왔다. 2014년 '신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쉰 넘어 시작한 공부로 박사 학위를 딴 뒤 수도권 한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병마와의 싸움은 고단했지만 안 대표는 이 시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안 대표는 "돌이켜보니 혼자 힘으로 일군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저 '잘 살고 싶다'는 욕망에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나를 지탱해줬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며 타인들에게 눈을 돌린 이유다. 암을 이긴 안 대표는 현재 모로코·태국·콜롬비아 등 해외 아이들을 비롯 국내 빈곤층 아동들을 돕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며 이를 위한 계획을 구상 중임을 밝혔다.
 
"남은 슈퍼마켓을 처분해 장학재단을 만드는 게 인생 목표 중 하납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제가 이처럼 타인을 돕게 될 줄 몰랐습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기쁨입니다.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 어려운 이때, 주위를 돌아보며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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