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에 신기원이 마련됐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 3대영화제인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최고상(賞)을 차지한 건 쾌거이면서도 문화·시대적 의미가 상당하다. 한국 영화 100년사를 다시 쓴 봉 감독이 '문화 한국'의 명성을 높였다는 찬사가 나온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상패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심사위원 '만장일치'…예술성·상업성·사회비판 의식 고루 갖춰

"저는 그냥,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린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질 날이 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손에 거머쥔 봉준호 감독(50)의 수상소감에 전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25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칸영화제는 세계 3대영화제 중에서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올해 칸영화제는 어느 해보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초청돼 경쟁이 뜨거웠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쿠엔틴 타란티노,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등 할리우드나 유럽의 쟁쟁한 감독들의 영화를 제친 결과다.
 
사실 봉 감독의 수상은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하게 점쳐졌다. 현지 공개 후 국내외 언론과 평단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의 호평이 쏟아지면서 기대감이 치솟았다. 특히 '기생충'은 평단과 마켓을 동시에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영화제가 선호하는 영화와, 마켓이 선호하는 영화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이례적으로 평단과 마켓의 호감을 동시에 얻었다. 평단 및 언론으로부터 최고 평점을 받았고 영화제 기간 마켓에서 60여 개국을 추가해 총 192개국에 판매됐다. 이는 한국 영화 가운데 최다 국가에 팔린 기록이다. 작가주의 영화를 애호하는 칸이 장르영화를 택한 것도 매우 상징적이다.
 
이처럼 영화 '기생충'이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은 데는 인류 보편적 주제를 다룬 것이 주효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미시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다. 영화를 본 대다수는 "우리 나라 상황과 다르지 않다"며 공감을 표했다.
 
여기에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부잣집에서 사교육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한국만의 특수한 풍경을 유머로 승화시킨 점도 호소력을 발휘했다. 봉준호 감독만의 작품세계가 이번 영화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그는 줄곧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봉 감독의 영화들은 한 가지 장르로 규정짓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매 작품 개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내며, 그러면서도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출력과 예측 불허의 상황 설정, 위트 있는 대사 등으로 '봉준호 장르'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봉 감독의 영화들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이 그간의 영화를 통해서 증명을 했듯이 ‘기생충’도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이 잘 맞춰진 영화”라며 “한국관객을 비롯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즐거운 영화적 경험과 함께 빈부차와 갑을관계에 대해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나 봉 감독의 이번 수상은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올해로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이처럼 뜻깊은 해에 한국 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칸에서 폐막식을 참관한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40년 동안 황금종려상에 도전했던 모든 우리 영화인들의 열망과 좌절을 봉준호 감독이 한번에 이뤄줌으로써 앞으로 많은 영광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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