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쪽방, 시설 등에 거주하는 홈리스들을 생각하면 보통 남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정폭력과 남편의 외도 등으로 인해 거리를 나다니는 여성홈리스도 있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홈리스들의 이야기를 영화 '그녀들이 있다'를 통해 마주하고, 어느 순간 왜 자신의 공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무비토크 현장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난 20일 중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여성홈리스와 함께하는 무비토크가 진행됐다.ⓒ데일리굿뉴스

열악한 환경과 숨어 지내는 것이 다수

"남자처럼 보이려고 머리를 잘랐어요. 남자처럼 보여야 하니까. 남자가 아니면 못 사는 곳이에요."
 
술에 취한 남편에게 이유 없이 맞으며 살았던 여성홈리스 김 모씨(40대)는 집을 나와서도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 왔다. 그녀는 거리와 쪽방 등을 번갈아 다니면서 몇 차례 성적인 위협을 느끼고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채 지낸다고 했다.
 
김 모씨는 이러한 위험에도 불고하고 무작정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을 때려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며 "한번은 저를 액자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발로 가슴을 차 숨이 턱턱 막혀 숨도 못 쉬고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길거리와 쪽방, 복지센터들을 번갈아 가며 생활하는 여성홈리스들은 위험에 노출된 채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 중 여성은 전체의 25.8%였지만, 그만큼 여성을 위한 보호 시설도 턱 없이 부족했다.
 
현재 여성홈리스 자활·재활 시설은 서울에만 7곳, 부산·대구·광주·경북은 각각 1곳, 인천은 2곳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설들은 남성 위주의 시설이기 때문에 그 중 일부분에 여성 공간이 마련된 곳은 머물기 꺼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여성홈리스들의 주장이다.
 
또 다른 여성홈리스 이 모씨(50대)는 "여자들은 잠도 아무데서 잘 수 없고 숨어서 지낼 수 밖에 없다"며 "남자들처럼 널브러져 자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심지어 노숙인 쉼터에서 지낼 수 있어도 아이가 있으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가정폭력으로 세 아이와 함께 집을 나온 김 모씨(40대)는 "셋째 신생아가 있었는데 쉼터에서 100일 지나야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며 "신생아는 면역성도 약하고 사람들도 들락날락하니까 못 들어오게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여성홈리스들은 자립을 위해 취업을 하려 해도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생긴 '정신질환'과 '홈리스'라는 낙인으로 인해 시도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성홈리스 김 모씨(40대)는 정부에서 연결해주는 일자리 지원에 신청을 해둔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 상황이다.
 
홈리스라는 낙인이 두려운 김 모씨(30대)는 "회사에서 시설생활을 했는지 여부는 안 물어볼 것 같은데 언제든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이라며 "면접에 갔는데 얘가 이런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딱 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들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 한 번 쯤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며 "다른 사람 마을을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존중 받을 권리가 있는 여성홈리스

이렇게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홈리스들의 이야기를 제작하게 된 김수목 감독은 무비토크에서 이번 다큐영화를 통해 이들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김수목 감독은 "처음엔 그저 노숙인이라고 알고, 가까이 가기엔 힘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며 "다큐 영화를 1년간 제작하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여성홈리스들이 많이 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들도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며 "안정된 주거와 일자리는 누구나 필요한 것이지만 여성홈리스들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김 감독은 '그녀들이 있다' 영화에서는 가정 폭력으로 인한 여성홈리스들이 많이 언급되지만 이것을 가지고 여성홈리스들을 일반화 시키는 것을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실재 여성홈리스들은 가정 문제나 폭력 말고도 파산이나, 해고 등으로 인해 거리에 나온 이들도 많았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이 46.7%, '가족 관계의 어려움'이 43.3%로 뒤를 이었다.
 
보통 여성은 가족 안에서의 피해자, 남성은 경제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바로 한계를 나타낸다는 것이 김 감독의 지적이다.
 
김 김독은 "여성홈리스들을 소수 대상화하게 된다면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라며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홈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인간의 존엄함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설에 살고 있던 아니던 그 권리를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홈리스 김모씨(30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담담했다. 나 자신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상황을 겪는 여성홈리스들을 보니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나도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