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누구보다 하루가 아깝게 시간을 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원기’와 ‘미겔’이다. 홍원기 군은 우리나라에서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는 단 한명의 아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번 방송에 소개돼 사연이 널리 알려졌다.

원기 가족과 특별한 인연인 ‘미겔’ 역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아이다. 소아조로증 환아인 이 아이들은 노화 속도가 일반인보다 8배 정도 빨라 일상생활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대수명이 약 15세, 최대수명이 20세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면 안 해 본 것이 없는 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는 시야를 넓혀 원기와 같은 아시아계 소아조로증 환아들의 치료를 돕고 아이들 간 교제의 장 마련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홍 목사를 통해 원기와, 최근 방한한 미겔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왼쪽)와 홍원기 군 ⓒ데일리굿뉴스

“축구보는 것보다 아빠랑 대화하는 게 더 좋아요”
 
지난 19일 본지가 만난 원기는 의젓한 아이였다. 원기를 만나기 위해 데일카네기코리아가 후원하고, 아시아프로제리아 재단(사무국장 홍성원 목사)이 주최한 ‘소아조로증 환자 후원의 밤’을 찾았다.
 
후원의 밤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는 원기와 홍 목사가 사회자의 질문에 맞춰 각자의 답변을 스케치북에 써 선보였다. 원기와 홍 목사의 대화에는 친구 같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돈독한 애정이 묻어났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원기는 “아빠와 함께 대화하는 것”이라면서 “다양한 리액션과 표정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아빠가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빠와 다툼이 있을 때 아빠가 자신의 주장만 맞다고 하는 것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끌어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원기는 “그동안 나를 돌봐줘서 고생한 점이 고맙다”라고 대답해 감동을 전하기도.
 
국내 유일한 소아조로증 환자인 원기(14)는 다섯 살 되던 해 소아조로증으로 진단 받았다. 소아조로증은 전 세계적으로도 100여 명 밖에 보고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의학보고서에 따르면 이 질환을 겪는 아이들은 1미터 정도의 키에 앙상한 팔다리로 구부정하게 걸으며, 손발톱조차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아직까지도 마땅한 치료약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 임상실험 중에 있다.
 
그런 아이를 옆에서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본 원기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이의 치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홍 목사는 “유명한 치유사역자를 찾아다니면서 기도 받는 것은 물론, 침도 맞아보고 지방 줄기세포 주사용법도 시도했다”며 “그러던 중 미국 보스턴 조로증재단과 연락해 4년을 기다린 후 임상실험에 참여했고, 2년치에 해당하는 약을 받아 한국에서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4년을 기다렸던 약을 단 몇 일만에 끊어야 했다. 원기가 약을 먹은 지 일주일 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연이어 심한 구토 증세를 보인 것이다. 원기가 먼저 “약을 그만 먹겠다”고 말했다. 부모도 아이의 병이 나아지는커녕 더 고통스러워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약을 먹일 수 없었다. 그런데 약 복용을 중단하자 원기는 활력을 되찾았다. 밥도 잘 먹고 평소처럼 웃으면서 일상생활을 되찾았다.
 
 ▲방한한 미겔과 그의 엄마 마그다를 지난 18일 서울 삼성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일리굿뉴스

원기 친구 미겔, 예수님이 허락한 한 영혼
 
4년이라는 기다림이 무색했던 홍 목사는 당시 좌절과 상실감이 컸다. 하지만 이는 원기에게는 친구가, 홍 목사에게는 사명감이 확고해지는 기회로 바뀌었다.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원기와 동갑이자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미겔을 알게 된 덕분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기와 미겔은 금새 친해졌고 여전히 각별한 우정을 자랑한다. 홍 목사는 “아이들은 ‘게임’하면서 정말 잘 논다”면서 “각자 자기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스마트폰 화상통화를 통해 연락한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소아조로증 환자를 돕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프로제리아 재단을 시작했다. 아시아 지역 내 소아조로증 환아를 한국에 초청하여 치료법과 정보를 개발·공유하고,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겔 역시 홍 목사의 권유를 따라 보스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끊고 몸 상태가 호전됐다. 이는 홍 목사가 재단을 출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홍 목사는 “약을 끊으니 컨디션이 나아지는 현상이 원기 뿐 아니라 미겔에게서도 나타났다”며 “나지 않던 머리카락이 다시 나고, 헛배 부른 것이 빠지며 식욕도 좋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해 ‘소아조로증 후원의 밤’ 행사에도 참석한 미겔은 콜롬비아에는 자신 외 2명의 소아조로증 환아가 있음을 전하며 “한국에 올 때마다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미겔에게 외국에 있는 아빠와도 같다. 그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엄마와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는 미겔에게 교육, 옷, 생필품, 한국에 오고갈 때 드는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홍 목사의 가장 큰 바람은 원기와 미겔, 이 아이들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여러 가지 임상실험을 통해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또한 재정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겔처럼 아시아계 소아조로증 환아를 한국으로 초청할 시 통역해 줄 봉사자들도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아조로증 환아를 돌보는 것이 곧 그의 사명이라고도 고백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이미 확증하셨다. 때문에 또 다른 징표를 보여주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일 밤 원기를 보며 기도하고 원기의 순간순간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원기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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