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또다시 조현병(정신분열증)환자가 저지른 범죄에 떨고 있다. 지난 17일 경남 진주에선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 방화 사건으로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같이 정신질환자에 따른 흉악범죄는 1년에 1,000건 가까이 될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이들 중 일부가 극단적인 강력사건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예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정신질환자들에 관한 관련법에 맹점이 있고 관리인력 등이 부족해 체계적인 사전·사후 관리가 요구된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이 병원을 가기 위해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안인득, 68차례 조현병 치료…관리 사각지대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불과 지난해만해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나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도중 환자로부터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간에 충격을 줬던 이 사건들의 피의자 모두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이번에 불거진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42) 역시 조현병을 앓은 전력이 밝혀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안인득은 2011년 1월께부터 2016년 7월까지 진주 한 정신병원에서 68차례에 걸쳐 조현병으로 치료받은 기록이 확인됐다. 안인득이 2010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며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해 재판에 넘겨졌을 당시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진단을 처음으로 받은 이후 약 5년간 정신질환 진료를 받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범행 전 33개월 동안은 치료를 받지 않은 채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체계가 전무해 안인득은 관계당국의 관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불과 6개월 동안 안 씨가 아파트 주민들을 폭행·위협한다는 신고로 경찰이 여덟 차례 출동했지만, 경찰은 보건소나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신고 내용과 처벌 전력을 살펴보면 안인득은 타인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고위험 정신질환자임에도 제대로 된 대처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전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서 응급입원 대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데 강제로 입원시켰다가 도리어 고소당하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안 씨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자들이 일으킨 범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살인·방화·강도 등 흉악범죄를 일으킨 정신질환자는 2014년 731명이었던 것이 2017년에는 937명으로 3년 사이 28.2%나 증가했다. 또 지난해 기준 전체 살인 및 방화 범죄자 열명 중 한 명은 정신질환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중증 정신질환자는 퇴원 후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 등록해 관리를 받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안 씨의 경우에도 자신의 병력공개를 거부해 관리감독을 비켜갈 수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관련 절차를 설명했더니 안 씨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언급하며 '보건소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범죄 위험성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미리 발견하더라도 사전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의사 한 명의 진단으로도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서로 다른 소속 의사 두 명의 교차진단이 필요하다. 과거 안인득의 가족은 그의 조현병 증세가 심각해졌다고 판단, 강제입원을 시키려고 했지만 안인득이 진료를 거부해 전문의 2명의 진단서가 없어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법·제도의 정비는 물론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서 관계기관이 폭력 성향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거나 적법 절차를 통해서 강제입원을 좀 더 원만히 할 수 있게 한다든지 조치가 필요하다"며 "구체적 대책이 나와야 사회적 불안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원대학교 정신과 박종익 교수는 "개개인에게 접근하는 차원으로 해결될 수 없고 결국 사회 구조적 문제"라며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 사례는 우리 의료시스템이 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사이코패스와 달리 조현병은 치료 가능한 병으로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사회가 나서서 적절한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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