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 저녁(현지시간) 화재가 발생해 엄청난 불길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영상으로 중계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모습은 여러모로 지난 2008년 2월 10일 밤에 일어난 대한민국 국보 1호 서울 숭례문(崇禮門) 화재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큰불이 난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11년 간격으로 화마 겪은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

무엇보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국과 프랑스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대표 문화재다.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세운 도성 정문이자 남대문인 숭례문은 건축 시기를 명확히 아는 서울 시내 목조 현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태조 7년(1398)에 완성한 뒤 세종과 세조 때에 보수 공사를 했다.
 
돌을 쌓아 조성한 석축(石築) 위에 무지개 모양 홍예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측면 2칸인 누각을 올렸다. 현판은 특이하게도 세로로 글씨를 새겼는데,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태종 장자인 양녕대군이 썼다고 기록됐다.
 
파리 시테섬 동쪽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럽 고딕 양식 건축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꼽힌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열었고,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장례식 등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펼쳐진 무대다.
 
아울러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로도 유명하고, 지금도 하루 평균 관광객 3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전면 광장에는 근대 프랑스의 출발을 알린 프랑크왕국 샤를마뉴 대제 동상이 있다. 이는 이 대성당이 현대 프랑스에 어떤 상징을 지니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숭례문 화재는 70세 남성이 홧김에 일부러 불을 지른 방화였으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첨탑 보수 작업 과정에서 벌어진 실화로 일단은 추정된다.
 
화재 원인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상층부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공통점이다. 숭례문 방화범은 2층 문루에 불을 질렀고,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촘촘하게 설치한 가설물인 비계와 성당 내부 목재를 중심으로 불이 났다.
 
이로 인해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모두 지붕을 잃었다. 숭례문은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자 지붕을 해체하기로 결정했고, 오전 2시께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화염 속에서 화재 1시간 만에 나무와 납으로 만든 첨탑이 사라졌다.
 
생중계된 영상을 본 시민들이 일제히 비통함을 토로한 점도 동일하다. 숭례문 화재 당시 서울시민들은 상실감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화마에 휩싸인 장면에 눈물을 쏟아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본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도 비통함에 사로잡혀 탄식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 모두 전소(全燒)는 피했다는 점이다. 숭례문은 5년 3개월간 전통 방식에 가깝게 진행한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기간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긴급 발표를 통해 "최악은 피했다"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건축 전공자로 숭례문 복구에 단장으로 참여한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접한 순간 안타깝고 슬프기 짝이 없었다"며 "공사 과정에서 실수로 불이 났는지, 아니면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이 방문하는 오버투어리즘 영향으로 화재가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비올레르뒤크가 19세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복원했는데, 당시에 그는 원형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방법과 기술을 도입하고자 했다"며 "프랑스 정부가 향후 대성당을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지 우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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