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어두웠던 역사의 흔적이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면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관광을 말한다. 우리말로 '역사교훈 여행'이라고도 불린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세계 각국에 세워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박물관·추모관 등이 대표적인 장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후(戰後) 독일은 과거 나치가 유대인에게 가한 만행에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진심 어린 사죄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독일이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철저한 반성으로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독일의 참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노력이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독일을 용서했다. 하지만 뼈아픈 역사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홀로코스트 관련 센터 등을 세워 다음 세대가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얻도록 생생한 교육의 현장으로 삼았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노력은 자신들의 역사를 지켰고 기억했다.
 
이스라엘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몇 년 전 한 방송 뉴스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는 "안중근 의사가 누군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머뭇거리며 답했다. "유명한 의사(醫師) 선생님 아닌가요?" 비단 남학생만의 이야기일까? 혹 역사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아닐까?
 
 ▲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에 체포된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줄 3번째(왼쪽부터) 비어있는 공간의 주인공 인종익은 천도교 전주교구실에 독립선언서 1,800여 장을 전달하고 붙잡혔다. 그의 신상카드엔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데일리굿뉴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무명의 평범한 사람들 '보통 영웅'
 
"그들 중에는 저명한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명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은 대개 무명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 <만세열전> 프롤로그 중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민족문제연구소 조한성 연구원의 <만세열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보통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에 주목한다.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조명한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 이 책은 3·1운동을 기획하고 전달하고 실행한 숨은 주역들의 고민과 결심, 실행 그리고 일제에 잡힌 후 경찰과 검사, 판사와의 팽팽한 심문 과정 등 100년 전 그날의 숨 가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개한다. 특히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은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인물이다.
 
"그대의 경거망동으로 다수의 사람이 징역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래도 좋은가?"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그대가 감옥에 들어가면 가족은 어떻게 하나?"
"지금 내 가족을 걱정해주는 것이오? 내 가족은 가족대로 자활의 길을 구할 것이오."
 
1919년 3월 6일 청주경찰서 조사실. 조선인 경부 이성근(33)의 계속된 고문으로 고개를 돌릴 만큼 참혹한 모습을 한 남성이 말했다. 천도교가 운영하는 인쇄소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49)이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 28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주와 이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뒤 3월 2일 청주에서 순사들에게 붙잡혔다. 그의 몸에서는 독립선언서 200여 장이 나왔다.
 
인종익은 무수한 고문과 구타에도 전주와 이리에 들른 진짜 목적을 숨겼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는 독립선언서 1,800여 장을 천도교 전주교구실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독립선언서가 전주에서 배포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체포 후 1년 6개월가량 수형생활을 했다. 1920년 8월 서대문감옥에서 만기 출옥한 그의 기록은 여기서 끊긴다. 일제가 만든 그의 신상카드에는 사진마저 빠져 있었다. 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배재고보 2학년 김동혁도 처음 소개된다. 김동혁은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결국 그는 헌병에 체포돼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을 받은 후,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학생이면서 이번 계획에 어째서 가담했냐"는 예심판사 심문에 김동혁은 말했다.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초연한 태도는 신상카드에 실린 사진 속 앳된 모습과 대조되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이밖에도 이 책은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로 광목에 태극기를 그려 만세시위에 참여한 순사 정호석, 그리고 정호석을 따라나선 그의 열 살짜리 딸과 흥영여학교 어린 여학생들, 끔찍한 고문에도 동료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은 경성고보의 기독청년들 등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통 영웅들을 기록하고 있다.
 
 ▲<만세열전> 3·1운동의 기획자들·전달자들·실행자들(조한성 지음, 생각정원)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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