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책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을 펴냈다. 그는 책을 통해 아이를 기르거나 남편을 외조하는 등 전통사회 한국여성이라는 틀을 깨고 강한 리더십과 진취적인 모습으로 역사적 활동을 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했다. “일제의 무력 침략 하에 피해 입은 이들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사명감으로 알릴 수 밖에 없다”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본지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을 지난 25일 서울 망우역 근처에서 만났다.ⓒ데일리굿뉴스

 여학생 비밀결사대, 만세운동 확대 불 지폈다
 
심옥주 소장은 2009년 비영리법인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기 위한 발굴작업과 학술연구 등을 하고 있다. 윤희순 의사를 비롯해 주목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유관순상, 2015년 학술상을 받았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총망라하는 연구조사를 올해로 10년 째 이어온 심소장은 2016년 출간한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다>를 읽기 쉽게 풀이한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를 출간한 것.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소소한 역사적 사건들과 이들의 진취적인 여성상을 쉬운 서체로 다시 풀어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개 과정에서 전국 곳곳에 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지며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 ‘비밀 결사대’ 관련 내용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부산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1903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마펫이 평양에 설립한 숭의여학교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숭의여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결성한 항일비밀 결사 조직 송죽결사대 등이 있다.

심 소장은 “호수돈여학교 비밀 결사대’와 ‘숭의여학교 송죽결사대’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강화하는 비밀 집회를 주기적으로 가진 대표적인 비밀 결사대였다”며 “3.1운동 이후에도 임시정부요원 활동을 하며 대한애국부인회 활동 등의 주역으로 만세운동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유관순 열사 뿐 아니라 권애라, 장정심, 김경희, 황에스더 등 뚜렷한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한 리더십을 가진 여성지도자들이 여기 포함된다.

이러한 여학생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은 1886년 서울 이화학당, 1887년 정신여학교 설립 등 여성교육 확대와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의견이다.

그는 “기독교는 당시 전통사회 그림자 속에 갇혀있던 한국여성에게 여성들 개개인은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시킴으로써, ‘내가 이 사회에 뭘 할 수 있을까’라는 희생과 봉사정신을 심어주었다”며 “교육기관 설립과 확산은 당대 여학생들이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애국·애족사상을 갖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입지를 굳히게 했다”고 부연했다.

저평가 되는 한국 어머니들의 피해, 사명감 심어줘
 
 ▲책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심 소장이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활동을 알리는 데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다.

그는 “윤희순 의사는 유교집안 여성으로서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남편, 아들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당시 사회분위기 속 그는 현모양처로 뒷바라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병단을 꾸리고 의병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웠다”면서 “가문에서 독립운동 정신의 주춧돌 역할이자 리더적인 면모를 보인 그가 매력적이었기에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이 확인될 때마다 짜릿함을 느낀 그는 작년 부산대 교수직까지 내려놓고 서울로 올라와 여성독립운동가 연구와 자료조사에 더욱 집중했다.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향한 그의 열정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무모한 일에 괜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연구소가 비영리로 꾸려지다 보니 정부나 외부의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심 소장은 “이때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남성 위주로 기술돼 여성 활동가들의 기록이 미진하다”면서 “한국 어머니들이 역사적으로 입은 피해가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도 열어 놓을 수 있다면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심 소장은 무명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기틀 마련을 위해 정부에 제안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성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는 분들을 보면 모호한 서훈 기준으로 훈격이 저평가 되는 부분들이 많다.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민관 소통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전국을 총괄해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정부 주도 ‘여성독립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기초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다음세대가 한국여성의 역사성을 되찾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오는 3월 8~9일 서울 광화문에서 청소년들이 재능기부로 직접 그린 ‘100점 전시회’를 계획 중이다.

끝으로 심 소장은 “독립을 향한 열망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여성도 독립운동의 대열에 함께 서 날선 총칼을 들이미는 일제에 태극기로 맞서 싸웠다”며 “여성이 남성 활동가의 뒷바라지만 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함께 조국을 지켜내고 버텨냈던 시기였기에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의 중심이고 대한민국 광복을 이끈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