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김찬호는 <유머니즘>을 통해 한국사회의 감정 지형도를 살펴봤다.
지금처럼 웃음이 절실한 시대 없었다
“오늘 환하게 웃은 적 몇 번이었나요?”
유머 있는 사람 되려면?…‘공감’·‘감수성’

 
진솔한 유머, 병든 사회 낫게 하는 힘
 
“진정한 유머는 경솔함이 아닌 진솔함에서 우러나온다. 자기에게 솔직할 때, 그리고 심각한 허세를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 가슴에서 가슴으로 진동하는 익살이 솟아오른다. 그 웃음은 세상을 다르게 만날 수 있는 삶의 자리를 빚어낸다.”
 
미국 갤럽사가 지난 2014년, 전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감정에 관한 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나라의 순위를 살펴보니 1위가 파라과이, 2위 콜림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석권했다. 미국은 25위, 독일은 34위, 중국은 45위, 일본은 83위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몇 순위였을까. 143개국 가운데 121위, 하위권이었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다는 조사결과가 매년 발표되는 만큼 예상된 결과지만, 긍정적인 감정의 경험을 어떻게 산출했을까?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어제 느긋하게 쉬었습니까? △어제 미소를 지었거나 크게 웃었습니까? △당신은 어제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 받았습니까?
 
가파른 생존경쟁 속에서 일과 공부에 치이는 한국사회. ‘피로사회’라는 말이 전혀 위화감이 없을 만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출퇴근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온통 무표정이다. 하루하루 사는 게 그저 힘들고 짜증과 분노로 점철된 일상에 유머가 깃들 자리는 없었다. 사람들은 “웃고 싶어도 웃을 일이 없다”고 말한다.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생애의 발견-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모습을 분석해 온 사회학자 김찬호는 최근 <유머니즘>을 펴냈다. 저자는 유머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웃음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공유되고 사회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고찰했다.
 
무한 경쟁을 통한 성장, 풍요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강박을 내려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지금 유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지금처럼 세상에 웃음이 절실한 시대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유머 감각이 하나의 스펙이 됐다. 타인에게 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주목을 받고, 리더십에서도 유머 감각이 요구된다. 하지만 유머는 공부한다고 늘지 않는다. 남들에게 들은 유머를 빼곡하게 적고 그걸 달달 외우거나,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을 챙겨본다고 유머를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유머는 스킬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머는 스킬이 아닌,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 유머러스한 발상과 표현은 사물을 참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준다. 에고의 집착을 풀고 상생의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자기를 상대화하는 용기, 주어진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점,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움직임을 순간 포착하는 직관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유머는 대화에서 양념처럼 첨가되는 조미료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인간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바탕이 되고,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온통 무표정인 사람들. 저자는 "지금처럼 세상에 웃음이 절실한 시대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유머에 휴머니즘 담겨야…“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
 
유머는 인간이 발휘하는 독특한 정신적 능력이다. 경험이나 상황을 새로운 각도에서 포착하는 직관이자, 이를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성이 담겨있다. 유머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를 확장하면서 소통에 활력을 불어넣고 유대감을 높여준다. 또 ‘뼈 있는 농담’이라는 말처럼, 유머는 사태의 본질을 통찰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가 병적인 웃음으로 만연하다고 진단한다.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쾌감을 느끼는 비웃음,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희롱 유머,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는 과시적인 미소 등 병적인 웃음이 가득하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유머가 통하고 안전하게 웃을 수 있는 삶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개인적인 시간 역시 혼밥, 혼술, 1인 가구의 증가로 더 고립되고 단절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각종 미디어에서 온갖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쏟아지지만,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보며 웃는 웃음은 사뭇 다르다. 저자는 가슴을 가득 채우는 웃음은 사람과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마음 터놓고 대화를 나눌 때 발생한다고 말한다.
 
유머는 그 의도가 빗나갈 위험을 안고 있다. 웃자고 한 말인데 죽자고 덤비고, 진지한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저자는 유머가 폭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맥락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들과의 관계가 어떤 정서로 채워졌는지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머는 개인이 발휘하는 능력이나 감각이지만, 신뢰와 공감의 사회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우연의 예술인 경우가 더 많다.”
 
모든 사람들이 팽팽한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무한경쟁의 시대, 이 책을 읽다 보면 ‘유머’가 우리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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