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는 베이비박스. 해마다 이곳을 찾는 부부가 있다. 서울 동작경찰서 임정일(53) 경감과 이사임(50)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 8년째 베이비박스를 후원하는 이들 부부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한다. 
 
 ▲8년째 아내와 딸과 함께 베이비박스를 찾아 후원과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임정일 경감.

29년 차 베테랑 형사 "아기 다룰 땐 조심조심"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이종락 목사)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만든 베이비박스는 딱 신생아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다. 아기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 바깥문이 열리면 알람이 울려 교회 내부에서 베이비박스 안쪽 문을 열고 아기를 구조한다.
 
임 경감 부부는 8년째 어린이날과 명절, 연말이 되면 쌀과 기저귀, 분유 등 생활필수품과 후원금을 들고 이곳을 찾는다. 찌는 듯이 더웠던 몇 해 전 여름에는 더위에 약한 아기들을 위해 에어컨을 기부하기도 했다.
 
임 경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유산을 한 뒤 아기가 안 생겼다. 10년을 기다리다가 입양을 생각했는데 관련 내용을 찾다가 우연히 베이비박스에 대해 알게 됐다"며 "우리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아내가 먼저 봉사활동을 하자고 얘기를 꺼냈고, 매년 꾸준히 기부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기적처럼 아기가 생겼다. 부부는 딸의 돌잔치 축의금과 돌반지 등을 전부 베이비박스에 기부했다. 이종락 목사는 아이 이름을 '선교하는 아이'라는 뜻의 선아라고 지어줬다.
 
어느덧 8살이 된 딸은 부부와 함께 매달 베이비박스를 찾는다. 따뜻한 물에 아기들을 씻기고 입양 되지 못한 장애아동들을 보살피며 청소와 빨래도 돕는다. 임 경감은 "처음에는 장애아동들을 보고 무서워하며 울었지만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진 시대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건 점점 쉽지 않아지고 있다. 임 경감은 무엇보다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경에서도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있는데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라며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덜 쓰면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경감은 강남·서초 경찰서 등 강력계를 거친 29년 차 베테랑 형사다. 지난 2010년에는 현금 1억 원이 든 가방을 훔친 용의자를 붙잡아 특진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범인을 잡는 것보다 아무 힘 없는 갓난아기를 씻기는 게 더 어렵다. 임 경감은 "혹시 아기가 다칠까 봐 조심조심 하다 보면 어느새 목덜미가 땀 범벅이 된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종락 목사는 "그 동안에는 임 경감이 쑥스러워하며 봉사하는 걸 알리기 원치 않아 사진 한 장 없었다"며 "연말과 새해를 맞아 이 훈훈한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재차 설득했다"고 전했다.

2019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올해 8명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왔다. 이종락 목사는 "교대 근무를 해야 되는 바쁜 경찰 업무 중에도 비번 때 찾아와 봉사하고 후원하는 게 쉽지 않은데도 베이비박스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준다"며 "사랑의 빚을 많이 졌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부부는 베이비박스 후원 외에도 위례성복교회 집사로 섬기며 지역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 봉사, 해외 선교 등에 참여하고 있다. 임 경감은 "후원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아기들을 돌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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