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34층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회색 빌딩, 정문 위에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및 조절국’이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고, 세계국가의 모토인 '공동사회, 동일성, 안정’이라는 방패 모양의 현판이 붙어 있다.” <멋진 신세계>의 첫 문장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인간
 
<멋진 신세계>속의 사람들은 보카노프스키 법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그들은 한 개의 난자로부터 하나의 태아가 나오고 거기서 한 사람의 성인이 생기는 기존의 자연 법칙을 거부하고 보카노프스키 법에 의해 난자를 처리한 가운데 그 난자에 싹이 나고 증식해서 분열하게 한다.

“1개의 난자, 1개의 배아, 1명의 성인(成人)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보카노프스키 절차에 의한 난자는 싹이 나고 증식하여 분열된다. 80 내지 96개의 싹들은 저마다 완전한 배아로 성장하며 각각의 배아는 완전한 크기의 성인으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1명밖에 자라지 못하던 곳에서 96명의 인간이 성장하면서 말이다.”
 
 ▲<멋진 신세계>속의 사람들은 보카노프스키 법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데일리굿뉴스

80~96개의 싹을 틔우며 그 한 개 한 개가 성장해 완전한 형태를 지닌 태아가 되고 각각의 태아가 완전한 크기의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전에는 한 인간이 자라던 곳에서, 96명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의 유전자 조작기술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태어난 인간을 표준형의 감마 계급, 한결같은 델타 계급, 균등한 엡실론 계급으로 나눠 교육하고 키운다.

예를 들어 델타 계급을 교육시킬 때는 그들이 꽃과 책을 싫어하도록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훈련에 돌입한다. 델타 계급을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시켜놓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어 책을 증오하게 만들고, 꽃을 감상하라고 해놓고는 전기 쇼크를 주어 꽃도 증오하게 만든다.

하층계급의 인간이 독서로 인해 세계국가의 시간을 낭비한다든가, 해로운 독서를 함으로써 그들의 조건방사 작용을 약화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꽃을 좋아하는 등 자연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델타 계급에게는 ‘여가’를 증오하게 해 일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키워진 델타 계급은 아예 책과 꽃을 볼 때의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일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할 일도 없게 된다.

계급 따라 정해진 운명

소설에서 인공부화조절국에서 태어나는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 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앞에서의 언급했듯이 이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이 처한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그러한 가치관이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해 학습된 것이라면 그 행복을 진실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20세기 문명이 어디로 치닫고 있는가를 회화적으로 묘사해 그것이 지닌 위험을 경고한 작품으로, 20세기에 쓰여진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손꼽힌다. 기계 문명의 극한적인 발달과 인간 스스로가 발명한 과학의 성과 앞에 노예로 전락해 마침내 모든 인간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는 지경에 도달하는 비극을 묘사했다.

이 작품은 헉슬리가 1931년에 써서 1932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2540년 미래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인간의 대량 생산과 최면 교육이 이뤄지는 등 변화된 사회를 묘사한다.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이지적인 문체를 통해 현실의 다양한 가치의 혼돈 속에 자아를 해제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보여 준 천재적인 작가의 천재적인 작품이다.

소설 속의 26세기는 아니지만 현대사회 우리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돼 보인다. 평등사회라지만 부귀에 따른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형성되는 모습이 연상된다. 상위 1%가 되기 위해 마치 계급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는 소설 속 장면처럼 개인의 적성과 꿈은 무시된 채 무작정 앞을 향해 질주하도록 자녀들을 몰아세우는 일부 계층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또한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의 의지가 과학 기술에 완벽히 종속돼 버린 끔찍한 전복에 대해 경고한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은 당연히 이를 깨닫지 못하도록 세뇌돼 있다. 

완벽하게 비판능력이 상실된 사람들에 의해 세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자기 생각은 없이 권위자의 생각에 휘둘리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고하려고 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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