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한 해 과로로 숨지는 이들만 민간부문에서 320여 명, 공공부문에선 35명에 달한다. 학계에서는 초과근무를 하는 사람일수록 과로사의 대표적 유형인 뇌·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과로사·돌연사는 주로 40, 50대 중년 남성들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맞벌이 가정이 급격히 늘고 여성이 일과 육아를 모두 책임지게 되면서 과로로 쓰러지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265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근로시간이 많다.(사진제공=연합뉴스)
 
'직장인 아내' 희망 90%, 실제 가사분담은 20%
 
두 아이를 둔 서울고등법원 이승윤 판사는 한달 전 자택 안방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과로사였다. 열흘 전 시부상을 치른 이 판사가 숨지기 전까지 한 일은 전날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판결문을 작성한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 싱가포르의 한 호텔방에서 김은영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 증세로 쓰러졌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김 국장은 정상회담과 국제회의 등으로 매일 진통제를 먹으며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세 아이를 둔 맞벌이 워킹맘이었던 보건복지부 김선숙 사무관이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로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10여 년의 전문직 경력을 쌓아 일하면서 육아를 함께 병행한 '워킹맘'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녀를 둔 채 일하는 여성들의 삶은 엄마와 아내, 직장인 역할을 하느라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아이 스케줄을 관리하고, 퇴근하고 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이중고를 겪는다.
 
사회에서는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에서는 여전히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에는 87%에 달했다. 남편들에게 물었을 때도 '직장인 아내를 원한다'는 의견이 반대의견보다 2배 이상으로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2018년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1%였지만, 실제 부부 중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남편은 20.2%, 아내는 19.5%에 불과했다. 맞벌이 부부 비율이 50%에 육박하지만 여전히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더 기울어져 있는 현실이다. 
 
일·육아 양립 정책, 남성에게도 적용돼야
 
워킹맘들의 잇따른 과로사 소식에 맞벌이 여성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며 입을 모은다.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 뿐 과로로 유산하거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우울증 등 크고 작은 병으로 아프지 않은 워킹맘들을 찾기 힘든 것.
 
실제로 전문가들은 "일하는 여성이 늘고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겉돌고 있다"며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에도 여성들이 느끼는 과로와 부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하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0~7세 자녀를 둔 여성의 2010~2017년 육아휴직 사용률은 38.3%인 반면 같은 기간 남성의 육아휴직은 1.6%에 불과했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 한 손에는 유모차를, 다른 한 손에는 카페라떼를 든 남성을 일컫는 '라테파파'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남성만 쓸 수 있도록 별도의 육아휴직을 할당한 뒤로 현재 스웨덴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은 25%에 달한다. 저출산 해소가 아닌,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는 최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를 목표로 해 2040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겠다는 것.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돌봄체계에서 남성의 육아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배우자 출산휴가, 근로시간 단축 등 세부 과제를 설정했다"며 "그 동안의 출산 장려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여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아이 낳기를 선택하도록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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