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KT아현지사 화재로 수도권 일부 지역의 유·무선 통신이 먹통이 됐다. 고양 저유소 화재가 발생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재현된 것이다. 여론은 KT의 부실한 화재대응에 쏠려 있지만, 다른 통신 사업자들이나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가 기간시설들이 KT보다 나은 안전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이 현재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적의 공격이나 천재지변이 아닌 우리 사회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경찰과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들이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KT통신구에 설치된 화재방지 시설은 소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사진=연합뉴스)

 
소방설비는 달랑 '소화기 한 대'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서울 5개 자치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대의 유·무선 통신이 먹통이 됐다. 이 사고로 유선전화 16만 8,000회선과 광케이블 220조가 끊어졌다. 사고회선을 사용해온 서울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고양 저유소 화재와 종로 고시원 화재에도 한국 사회 안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현행 소방법은 통신구 길이가 500m 이상인 경우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는 통신구 길이가 150m에 불과해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화재방지 시설은 소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 서울 종로 5가 통신구 화재로 수도권 일대 통신이 두절됐었고, 2000년 봄에는 서울 여의도 전기·통신 공동구에 불이나 일대 통신이 장애를 빚은 바 있다. 앞선 사고 때도 각종 대책이 쏟아졌지만 정부 차원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같은 사고를 반복하고 말았다.

화재 대응뿐만 아니라 부실한 '백업(우회통신로)'도 문제로 지적된다. 통신구의 경우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회망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현행법은 전국 단위 서비스에만 백업 체계를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현지사의 경우 전국망 시설이 아닌 수도권 일부를 관할하는 통신구(D등급)여서 백업 의무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드러나듯 통신 서비스의 범위가 금융, 치안, 의료 등 이전 시대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다 강화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울 KT아현지사 화재로 수도권 일부 지역의 유·무선 통신이 먹통이 됐다. 고양 저유소 화재가 발생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재현된 것이다. 사진은 고양 저유소 화재당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KT화재, 안전 외주화의 현주소

일각에선 이번 KT화재 사태가 KT의 무리한 '안전 외주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이었던 KT가 2002년 완전 민영화되면서 무리하게 인력을 줄여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KT는 민영화 이전 직원이 6만여 명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정규직원의 수가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다.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구조조정에 주력하여 핵심 시설관리까지 외주 업체가 맡은 실정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KT는 개통과 애프터서비스, 창구 업무는 물론이고 케이블 관리까지 핵심 업무들을 도급으로 전환했다. 사실상 하청업체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KT 전현직 직원들로 이뤄진 KT민주동지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성명을 내고 "한 곳의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가 5개 구 지역의 통신을 모두 마비시킨 것은 KT가 비용 절감을 위해 지점별로 분산돼있던 통신시설을 소수의 집중국으로 모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KT화재는 소규모라는 이유로 소방설비를 갖추지 않아 발생했다. 화재감지 센서가 없어 불이 난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고양 저유소 화재와 닮아있다. 종로 고시원 화재도 마찬가지다. 화재를 알리는 센서도 화재를 진압할 최소한의 소방설비도 갖춰져 있지 않아 큰 인명사고로 번졌다. 국가기간망에서부터 일상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화재와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일련의 화재사고로 인해 대한민국은 엄청난 사회적비용과 인명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방시설의 기준강화는 물론 설치되어 있는 시설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기능하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부족과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 이제는 당면한 사고수습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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