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선교의 요람, 민주화 운동의 사적지'.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영등포산업선교회 앞에 놓인 기념비의 글귀다. 1960~70년대 노동의 '노'자만 꺼내도 빨갱이라는 소리가 나왔던 때부터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인권 보장을 외쳤던 영등포산업선교회.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영등포산업선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어봤다.
 
 ▲노동 착취와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1970년대 노동자들에게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작은 등불과도 같았다.

노동자 권익보호에 주력…독재정권 때 탄압 받기도

1958년부터 60년 간 노동자 인권 운동에 힘써 온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진방주 목사, 이하 산업선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가 1957년 선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창립한 선교단체다.

당시 영등포 일대는 기계·화학·섬유공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경공업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다. 산업선교회가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는 공장에 몰려드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공장목회'로서 한국교회 최초의 산업선교가 시작됐다. 

영등포 지역교회 목회자들로 구성된 산업선교회는 영등포 단지의 수많은 공장들을 분담해 각 공장을 중심으로 예배와 성경 공부, 기숙사 심방을 나갔다. 산업선교가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꼽히면서 교회마다 산업전도회가 활발하게 운영됐고 공장에는 평신도 모임들이 생겨났다. 당시 5월이 되면 각 교회에서 열렸던 노동절 예배는 전 세계 교회 역사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진방주 목사는 "공장을 찾아간 목회자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못한 채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을 두 눈으로 보게 됐다"며 "열악한 환경에 처한 신앙이 없는 노동자에게 어떻게 복음을 실증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선교활동의 초점은 노동자의 권익에 맞춰졌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 6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사역을 모색하는 선교 심포지엄이 열렸다.ⓒ데일리굿뉴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억눌인 사람들에게 자유를'…

1960년대 말까지 전도에 주력하던 산업선교회는 70년대부터 차츰 노동 운동에 나섰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생긴 도시화·산업화라는 커다란 두 톱니바퀴 속에서 산업선교회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노동기본권 확립을 외쳤다.

70년대 엄혹했던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산업선교회는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다. 걸핏하면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2대 총무였던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를 비롯한 선교회 지도부들은 안기부에 잡혀가기가 수 차례였다. 산업선교회 모임에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해고되던 시기였다.

84년 영등포산업선교회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산업선교회의 이름은 도시산업선교회였다. 도시산업선교회를 줄여서 '도산이 들어오면 회사가 도산한다'는 악소문이 돌 만큼 산업선교회는 기업의 적, 좌익 빨갱이 단체로 낙인 찍혔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간 산업선교회가 무엇보다 주력했던 일은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었다. 평신도 모임 등 소그룹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은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차츰 눈을 뜨고 분노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산업선교회의 소그룹 운동으로 일어난 노동운동 중, 사상 최초로 노동자의 요구로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한 '해태제과 8시간 노동투쟁'과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몰락으로 이어진 'YH무역 신민당사 점거농성 사건'은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꼽힌다. 
 
 ▲60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낡은 건물이지만 지친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쉼터와 위로가 되어준 영등포산업선교회관은 내년 재건축될 예정이다.ⓒ데일리굿뉴스

"오늘도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것"

80년대 민주화 시기를 지나 90년대 들어서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한국사회는 새로운 노동 문제에 직면했다.

'비정규직 천만 시대'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면서, 산업선교회도 이러한 시대 변화에 발맞춰 실직자와 노숙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숙인 일시보호센터와 사회적 협동조합, 공공근로 일자리 알선 △감정 노동자들의 심리상담치유 △다문화 노동자와 아시아 난민 문제 등, '노동'과 관련된 일이라면 산업선교회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진방주 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교회 안에서의 신앙을 넘어 소외 되고 차별 받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새로운 60년을 향해 달려가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방향은 '생명 살림'이다. 생명이 죽어가는 이 사회에서 도시 빈민과 노동현장, 아시아 각국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60년이라는 격변의 세월을 지나온 영등포산업선교회 건물은 2019년을 기점으로 재건축된다. 진방주 목사는 "춥고 지친 노동자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하는 환대의 장소가 될 것"이라며 "교회 안의 신앙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역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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