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거제 살인사건' 등 최근 연이어 발생한 잔혹한 살인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월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가정폭력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금기어와 같았다. 그러나 사회 공동체의 암묵적인 방관 속에 오랫동안 곪아있던 '가정폭력'은 우리사회의 뇌관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이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실로 발생했다며 재발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연합뉴스
  
죽고 사는 문제 '가정폭력'
 

지난 10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사건 피해자 이모(47)씨의 딸이었다. 그는 사건 피의자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김모(49)씨를 향해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 시켜야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선고 받도록 청원드린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은 피의자 김씨가 이혼한 아내인 이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씨가 4년 전부터 계획적으로 범죄를 준비한 정황이 드러나고,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여론의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 가족은 과거 총 두 차례에 걸쳐 김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5년 가족은 용기를 내 처음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김씨는 2시간 만에 풀려났고, 경찰의 접근금지명령에도 가족 주변을 계속 배회하며 이씨와 자녀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2016년 두 번째 신고 당시에도 상황은 1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로부터 "직접 위해를 가한 게 아니라 처벌 강도가 약하다. 다음에 또 그러면 신고 앱을 깔아서 신고하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피해자 보호 대책도 충분한 강제력을 행사하지 못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김씨에 대한 조사나 처벌이 유야무야 처리되는 사이 협박은 실제 살인으로 이어졌다.
 
사회 인식 및 제도 강화 시급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신고 접수된 건수는 2013년 약 16만 건에서 2017년 약 27만 9,000건으로 증가했다. 이는 자구책으로 신고를 선택하는 가정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실제 검거로 이어진 건수는 약 3만 9,000건으로 13% 정도에 그쳤다. 또한 검거 인원 4만 5,200여 명 가운데 구속인원은 단 384명에 불과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부장은 "신체적 폭력 외에도 지속적인 언어폭력, 정서적 협박, 통제 등 일상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운데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법적 개입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이처럼 가정폭력의 개념과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사회가 잘 모르거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도 굉장히 유념해야 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박 부장은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과 더불어 "형사처벌, 보호처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등 적절하고 적극적인 법적 개입 운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가정폭력이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가정폭력특례법의 목적조항을 바꾸고,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불행히도 한국에서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유달리 고소 의지가 있지 않으면 사건처리가 안 되는 법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보호사건이라고 하면서 처리를 안 해주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등으로 면죄부를 주는 법제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시킬 수 없게 만든다"며 "가해자가 돌아가면 수십 년간 형성돼온 폭행이 또 반복되고 결국 인명피해가 나는 사건이 된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이 지금 보호돼야 할 것이 '가정'이 아닌 '피해자의 목숨'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사회는 그동안 수박 겉핥기로 본질을 보지 않았다"며 "가정의 폭력은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알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일단 형사사건처럼 시작하되 갱생이 되면 나중에 법원에서 가정보호사건으로 변경해서 처벌하면 된다"며 "법의 중심축을 가정의 보호에서 피해자의 생명권 보호로 옮겨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클리굿뉴스 11월 11일, 47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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