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을 뜻하는 청춘(靑春). 그러나 푸름의 상징은 이제 옛이야기. 2018년의 청춘은 빛바래져 가고 있다. 비 온 뒤 땅의 푸름이 우거지듯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비가 절실하다. 이에 <위클리굿뉴스>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주변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처한 실제적인 고민을 요청해, 청년 멘토들과 함께 이에 대해 짚어보고 해답을 모색하는 특집 기획을 연재한다. 이번호에서는 온누리교회 총괄수석목사, 호주 시드니새순교회 담임목회를 거쳐 현재 한국에서 사람살리는교회를 섬기고 있는 라준석 목사를 만났다. 그는 특유의 따뜻하지만, 예리한 조언으로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람살리는교회 라준석 목사 ⓒ위클리굿뉴스
  
"지치고 괴로워도 가장 중요한 본질 '믿음' 버리면 안돼" 
 
Q 살다보면 소위 잘 나간다는 비기독교인의 삶을 보며 비교의식을 가질 때가 많다. 특히 고난 가운데 주님 안에서 감사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크리스천 청년도 많은데.
 
라준석 목사(이하 라):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땐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비교우위에 있다 보면 교만하고, 비교하위에 있다면 좌절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의 큰 계획과 그분의 변치 않는 사랑, 나만의 달란트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소유가 인생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자존감이 회복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고난에 대한 깨달음이다.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 자의 형통은 복이 아니라 큰 화다. 고난 없는 형통은 그 자체가 무서운 징벌일 수 있다. 사람은 형통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기보다,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비로소 가까이 나온다. 하나님을 떠나서 멋대로 사는데 어떤 장애도 없다면 돌아올 기회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난이 축복인가? 쉽지 않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 분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이것은 축복이다.
 
Q 주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믿음과 구원의 확신, 어떻게 가질 수 있나.
 

라: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핵심은 모든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약속은 약속하시는 자의 신실성에 달려있다. 그런데 약속 받는 자의 상황 때문에 약속이 흔들린다. 특히 많은 크리스천이 '내가 변화되지 않았는데, 과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일까'를 고민하고 갈등한다. 바로 그 자체가 주님을 믿었다는 증거라 말하고 싶다. 내가 주인인 사람들은 절대 주님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믿음은 내가 잘 산다는 것에도 증명되지만, 내가 잘 살지 못할 때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죄스러워 하는 것으로도 반증될 수 있다.
 
Q 늘 상황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 여기고 실행해왔다. 설령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내 의지에 따른 결정일까봐 망설이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궁금하다.
 

라: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응답을 확실히 받으면 시도하겠다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런 경우 세월이 오래 걸리거나 응답이 끝까지 안 올 수도 있다. 먼저 충분히 기도하고 시도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 외에 우리에게 주신 판단력 등을 사용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다.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하나님의 사인일 경우가 많다. 진로, 교제 등 모든 것이 아주 상식적인 부분을 통해서 역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즉시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그 병의 전문의를 만나게 해주시는 것도 기도 응답이다.
 
Q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갈수록 더해지는 태도에 마음이 괴롭다.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참고 이해해야 하나.
 
라: 참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본인이 먼저 괴롭다. 힘든 걸 하는 게 영성이고 크리스천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마음을 넓히는 것에 힘써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용납할 수 있는 마음과 긍휼함을 구하라. 그리고 어떤 행위에 대해 인격으로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문다. 속을 알려고 하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도 사람 속을 알면 무섭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끝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갈 때 끝자락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마음이 괜찮다. 하나님의 마음은 올바른 길을 제시해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음과 용납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하나님 좋으라고 하는 건 아니다.
 
 ▲사람살리는교회 라준석 목사 ⓒ위클리굿뉴스
   
"주님 보시기에 진짜 괜찮은 삶 살 때 비로소 행복 완성" 
 
Q 힘들게 직장에 들어왔는데, 일에 치여 말씀과 기도생활이 어려울 때가 많다. 직장을 다니며 멀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고민이다.
 

라: 힘써야 한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힘쓴다. 예를 들면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 돌아가시면 힘써서 가지 않나. 가장 중요한 것이 신앙인데 그것이 버리는 1순위가 되면 안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언제든지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음 기회는 내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주어지는 것이다. 보통 현재의 힘든 상황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더 힘든 일이 왔을 때 선택하는 방식을 좌우한다. 조언하고 싶은 것은 힘든 상황을 뚫고 나가는 친구, 동역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동역자가 가족이면 더 좋다. 교회에서만이 아닌 삶에서도 자극을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Q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지만 아직까지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이 모두 결혼해 조급한 생각마저 든다. 배우자 기도를 할 때, 어떤 부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나?
 
라: 개인적으로 세 가지를 위해 기도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저와 맞는 사람이 있을 때 알아보게 해주시고, 좋은 마음이 생겼을 때 고백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구했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기도만 하지 말고 시도해야 한다. 사람도 많이 만나봐야 한다. 많이 사귀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배우자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성과 의지를 사용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준비다. 사랑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순수한 사랑을 찾아가야 된다. 내 마음의 가시와 거품, 교만을 뽑아내고 상대방에게 덕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주 앞에 서야 한다.
 
Q 요즘 교회엔 성비로 놓고 보면 형제보다 유독 자매가 많다. 그래서 일부 자매는 비기독교인과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 크리스천을 만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고민이다.
 

라: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을 만나는게 좋다. 그러나 설령 비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비기독교인과 결혼을 생각한다면 시간을 늦추지 말고 믿음 안에 하나가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목회자와 함께 만나서 시간을 가지면서 그가 기도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믿음만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건 또 다른 차원이다. 그걸 "나는 자신 있어"라며 일부러 이어갈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겠지만, 인생의 시간을 그렇게 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결혼은 선교가 아니다. 결혼을 선교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선교사역으로 이 한 사람을 구할 거야"라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말고 선교지로 가면 된다.
 
Q 결혼 후 위기가 닥쳤고,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 크리스천이 이혼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죽고 싶고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쉽게 결정하면 안 된다. 최소 세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봐야 한다. 둘째, 존중하는 사람과 상담을 해봐야 한다. 이 시간이 아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셋째, 내가 헤어졌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헤어지지 않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득을 100 가지고 손해를 0으로 할 수는 없다. 나는 이득만 보겠다면 그건 도둑이다. 결론으로 내가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는 부분보다 견딜 수 없는 부분이 많을 때는 어떻게 하겠나. 교회와 사회가 이혼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 자체로 받아주면서 다시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은 헤어지지 않고 잘 사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일어났을 때 역시 하나님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게끔 품는 것이 중요하다.
(위클리굿뉴스 11월 04일, 46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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