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일의 과정을 교훈삼아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점진적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위클리굿뉴스, 그래픽 김민성 기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한반도 평화통일은 그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소원'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달라졌다. 올해 3차례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 관계에 이례적인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통일을 향한 우리의 소원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국민 절반 이상이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최근 남북 관계 및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가늠하기 위해 '2018 통일의식조사'를 발표했다. 조사는 전국 16개 시도 만 19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전문 면접원에 의한 1대 1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59.8%가 "필요 또는 매우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응답으로 지난 2017년보다 5.7% 증가했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답한 응답자가 45.1%였다. "남북 간에 전쟁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31.4%로 뒤를 이었다.
 
반면 통일의식에 대한 불신과 우려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24.2%는 "반반 또는 그저 그렇다"고 답해, 지난 10년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16.1%나 차지했다. 지난해보다 5.3%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34.67%가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이라고 답했다. 이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27.67%), "정치체제의 차이"(19.33%), "사회문화적 차이"(13.33%) 순이었다.
 
독일의 경험은 어땠을까. 1989년 11월 9일,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 앞엔 거대한 인파가 운집했다. 동독 사람들은 곡괭이와 해머로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장벽 건너편 서독 사람들은 부서진 장벽 콘크리트 덩어리를 받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로부터 11개월 후, 독일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통일 독일 시대'가 도래했다. 분단 45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통일에 대한 환상은 곧 깨져버렸다. 통일 직후 불어 닥친 높은 실업률과 마이너스 성장률, 고금리 등에 독일은 신음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0년까지 20년 동안 약 2조 유로(약 2,600조 원)라는 막대한 통일비용이 지출되면서 독일 경제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내적 분단과 그에 따른 갈등은 생각보다 컸다. 지역·종교·정치·이념 등 격차를 극복하기까지 오랜 진통과 큰 희생이 뒤따랐다. 통일의 후유증은 25년간 지속됐다.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자 '독일 최고의 현자'로 꼽히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서독이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대해 취해온 관계정상화정책으로 이를 통해 동독과의 관계도 개선하고자 했다)을 계승해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입지적 인물이다.
 
슈미트 전 총리는 서독이 오랜 시간에 걸친 통일 준비에도 '통일과정에서의 7대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6년 방한 당시 한반도 통일에 대해 조언하며 "동독 국영기업의 민영화, 동독 통화에 대한 후한 가치 책정, 서독인과 동등한 수준의 실질임금 약속 등은 중대한 실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슈미트 전 총리는 "어쨌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보다 통일비용이 세배 더 소요될지라도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과정에서 희생은 언젠가 뒤따른다"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려는 정치·경제적 준비와 정신·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과 '우려'를 동시에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통일에 대한 섣부른 환상과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분단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 될 수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통일 한국'은 '통일 독일'보다 더 험난한 통일과정에 부딪힐 것"이라며 "구체적이고 철저한 통일 계획과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대비하는 탄력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위클리굿뉴스 10월 28일, 45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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