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수도권 이남 최초의 감리교회로 문을 연 공주제일교회의 옛 성전이 지난 6월 30일 기독교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박물관은 지난 116년 동안 교회가 펼쳤던 지역 선교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생생히 담아냈다.
 

▲수도권 이남 최초의 감리교회로 문을 연 공주제일교회가 선교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데일리굿뉴스

 

유관순 열사 길러 낸 ‘신앙과 학업’의 터전

 

1903년 미국 감리교에서 파송된 로버트 샤프와 앨리스 샤프 선교사 부부는 공주제일교회를 중심으로 교육과 의료 선교 활동을 펼쳤다.

 

특히 사애리시란 한글 이름을 가진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유관순 열사에게 처음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공주제일교회 반경 200리 정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다니며 복음 전도 활동을 벌였는데, 당시 충남 천안 지역에 살던 소녀 유관순을 알게 되고 학업을 이어가도록 독려했다.

 

유관순 열사는 1914년 사애리시 선교사의 양녀가 돼 공주제일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며 교회와 함께 위치한 영명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2년 동안 영명학교에서 공부한 유관순 열사는 이후 서울 이화학당에 진학했다. 이후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는 공주로 돌아와 영명학교에서 만세 시위를 위한 태극기를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정신과 민족 의식은 그녀가 청소년기를 보낸 공주 영명학교의 교육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공주영명고등학교 이기서 교장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애국인을 기른다‘는 영명학교의 교육 목표에 따라 성실히 공부했기 때문에 당시 영명학교 학생이던 유관순이 훌륭한 열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유관순 열사의 애국 정신은 영명학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영명학교를 설립한 우리암(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와 유관순을 발굴한 사애리시(앨리스 샤프)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서양 선교사의 헌신·기독 독립운동가의 희생 공존

 

공주제일교회를 거쳐간 이들은 하나같이 조국 독립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로버트 샤프 선교사 후임으로 파송된 프랭크 윌리엄스(한국명 우리암) 선교사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우광복’으로 지을 정도로 대한독립을 열망했다.

 

그의 아들 우광복(미국명 조지 윌리엄스)은 후에 6.25전쟁에 미국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미동맹을 체결하는 데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4년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시절 일찍 떠나 보낸 여동생, 올리브 윌리엄스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현재 여동생과 함께 공주영명고등학교 뒷편에 묻혀 있다.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는 1906년 공주에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유관순 열사와 같이 신앙심이 투철한 애국 청년을 양성하는 데 헌신했다.

 

또 1916년 공주제일교회에 부임한 신홍식 목사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기독교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3.1운동에 동참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신 목사는 일제에 체포돼 법정에 섰을 때 조국의 독립에 대한 확신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제일교회 29대 담임 윤애근 목사는 “교회를 거쳐간 서양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교육과 헌신으로 교회에서 예배 드리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신앙이 깊이 자리 잡았고, 이 신앙이 우리 민족 근대사에 큰 일익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발현됐다”고 설명했다.

 

공주제일교회와 영명학교가 충청 지역 선교와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자 1940년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와 학교가 강제로 문을 닫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복음을 향한 서양 선교사의 헌신과 기독 독립운동가의 희생이 공존하는 공주제일교회. 자유를 열망하던 이들의 독립정신을 기독교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다.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충남 공주시 제민1길 18)

운영시간: 화~금 10:00~17:00, 토 10:00~15:00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