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필리핀 정부는 유명 휴양지 보라카이의 환경정화를 위해 6개월간 전면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상낙원이라 불리던 보라카이가 각종 폐수와 오물이 넘치는 쓰레기 섬으로 변하며 '시궁창(cesspool)'이라는 오명을 안게 된 것은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주된 원인이었다. 수년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한 보라카이는 지난해에만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다.
 
영화 <비치(The Beach, 2000)>의 촬영지로 알려진 태국 피피섬의 마야 베이도 지난 6월부터 일시 폐쇄됐다. 하루 평균 5,000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근 산호가 훼손되고 쓰레기가 쌓이는 등 환경오염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최근 유명 관광지에서 방문객 수를 제한하거나 숙박을 금지하는 등 관광 규제의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오버투어리즘(over와 tourism의 결합, 과잉관광)'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베네치아 로이터=연합뉴스
 
생존권 투쟁 나선 주민들
 
'오버투어리즘'은 수용 범위를 뛰어넘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지를 점령하고 원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난 10년 사이 글로벌 중산층이 증가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국제 관광객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때마침 중국인 해외여행 확산(2017년 1억 4,500만 명)과 저가항공 및 공유숙박 플랫폼에 따른 관광비용 감소 등이 맞물린 시기이기도 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관광인구는 13억 명을 넘어섰다. 이는 세계 2위 인구수 인도와 맞먹는 엄청난 수치다.
 
국제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유명 관광지는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관광지는 환경·생태계 및 문화재 파괴, 교통체증, 소음공해, 부동산 폭등, 주민불안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심지어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른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y와 gentrification의 합성어)' 현상까지 빚어지자 사회적으로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와 phobia의 합성어, 관광 혐오증)'가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매년 인구 160만 명의 20배에 달하는 3,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오버투어리즘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급기야 지난해에는 복면시위대가 등장해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관광객들은 집으로 가라", "관광객들은 테러리스트"라는 거친 문구를 내세우며 관광객을 향한 분노를 서슴없이 표출했다. 심지어 관광버스의 바퀴를 훼손하거나 5성급 호텔의 창문을 깨는 등 과격한 공격도 잇따랐다. 이에 당국은 도심의 호텔 신축 금지 및 숙박 공유업체의 연간 영업일수 규제, 주요 관광지의 입장객과 입장시간 제한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에겐 베니스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확산된 대표적인 관광 도시다. 1953년 17만 5,000명이었던 베네치아 인구는 현재 5만 4,000명으로 극심하게 감소했으며, 공동화 현상이 도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간 2,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베네치아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외지인은 떠나라"며 주민들이 대형 크루즈의 정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와 베네치아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의 마요르카,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체코 프라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독일 베를린 등의 유럽을 비롯해 일본 교토, 인도네시아 발리,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홍콩 등 아시아에서도 오버투어리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도 최근 제주도와 서울 북촌한옥마을 등이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고통을 겪으면서 자구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규제를 강화하고 극단적인 정책을 펼치기 이전에 첨예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단순히 한 나라의 제도와 정책만으로 오롯이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책임 있는 의식과 에티켓이 준수되었을 때 비로소 대안을 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위클리굿뉴스 8월 12일, 36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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