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칼럼]여론조작의 무서움

이정기 목사(신나는교회)()

등록일:2018-07-25 15: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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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작은 개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사적인 목적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여론을 왜곡시키는 행위이다. 우리나라 IT산업은 이미 세계 일류수준에
▲이정기 목사ⓒ데일리굿뉴스
도달해 있다. IT산업은 한국 미래의 동력산업이다. 그런데 IT 산업의 찬란한 모습뒤에 가장 나쁜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댓글을 통안 여론조작이었다. 미디어들이 쏟아 낸 ‘일방통행식’기사에 억눌려 살던 시민들은 댓글을 통해 '쌍방향식'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양한 여론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사이버가 더 이상 사이버가 아닌 21세기 현대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댓글 문화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싸구려 저질 댓글들이 넘쳐난다. 과연 이렇게 악취나는 쓰레기통을 민주주의 활성화라는 장점 하나 때문에 존속시켜야 하나 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이다.
 
하루에 네이버를 보는 국민은 대략 3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네이버가 어떤 기사를 상단에 배치하고 어떤 기사는 내리느냐에 따라 여론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정을 댓글 갯수와 좋아요, 싫어요 같은 반응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2200명 역할을 했다면 어찌 되겠는가? 또 좋아요, 싫어요를 매크로와 같은 자동장치를 설치해 수만번, 수십만 번을 클릭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기사는 네이버 초기 화면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고, 반대 의견을 가진 기사는 추방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이다. 드루킹은 민주주의를 훼손시켰다. 2200여명의 아이디를 가지고 여론을 조작했다. 특검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제2, 제3의 드루킹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현 정권이 드루킹 게이트에 대한 의혹을 낱낱이 털어버리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야당은 특히 보수정당은 정치보복으로 읽히는 적폐청산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정권을 재탈환 했을 때 드루킹 게이트는 적폐청산 부메랑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상의 여론조작이 불가능하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구글’처럼 댓글을 아예 허용하지 않거나, 인터넷실명제 도입을 해야 한다.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역사상 가장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파하시고 여러가지 이적을 행하자 일반 대중들은 예수님을 환영한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서 특히 기득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심한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에게 가서 사형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빌라도가 아무리 예수님을 심문해 봐도 죄를 찾을 수 없었다. 석방하려고 하자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한다. 무리들의 외침에 결국 빌라도는 타협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다. 여론 조작의 무서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무리를 충동하는 자들
 
막15:11절에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무리를 충동한다. 여론을 조작한다. 무리들을 움직이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계속 원망 불평했는가? 충동하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함께 섞여나온 무리들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동안 광야를 더 돌면서 광야에서 죽은 것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명의 부정적인 보고가 백성들을 충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는다.<민14:37>
 
 선동을 따르는 무리들

 
막15:13-14절에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무리들은 충동하고 선동하는 자들에 의해 끌려 다닌다.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행동한다. 불과 4,5일 전에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대는 폭도들로 변한 것이다. 무리들은 선동하는 대로 끌려다닌다. 강단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소리보다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더 솔깃하고 매력적이고 재미있을 수 있다. 그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의 골방으로 향하면 아무도 듣지 못하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 목소리를 따라 행동하자.
 
무리에게 만족을 주는 빌라도
 
막15:6-10절을 보면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넘겨준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했다.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제도가 있었다. 빌라도는 그것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사면시키라고 요구한다.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난리를 친다. 소란이 점점 커져서 민란 직전의 상황까지 가자 빌라도는 슬그머니 타협해 버린다.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결국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최악의 선택을 한다. 계속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빌라도는 무리와 손을 잡는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다수결에 있다. 다수가 바른 생각과 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생각이 올바르지 못하면 세상은 한없이 어지러워지고 혼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지도자는 무리의 요구를 따르기보다는, 바르고 참되고 진실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무리가 좋아할 일만 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무리가 좋아할 일만 하면 결국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했던 빌라도의 형국이 될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무리를 만족시키기보다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도한다.
 
라인홀드 니버는 이렇게 말했다.‘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처럼 무리를 충동하면 안된다. 여론을 조작하면 안된다.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행동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복된 리더가 되자. 그래서 끝까지 진리편에 서고, 진리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기쁨되어 살고,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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