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미국 CNN의 한 보도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서 동물 생매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에는 2010년 발생한 구제역 사태 당시 돼지가 살처분 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동영상에는 구덩이 안에 수많은 돼지가 산 채로 서로를 뒤덮으며 울부짖고 있었고, 그 위로는 굴착기가 쉬지 않고 또 다른 돼지를 내던지고 있었다. 축산물가공처리법 및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가축은 사살, 전살, 타격, 약물사용의 방법으로 즉시 살처분해야 한다. 동물권단체 '케어(CARE)'의 박소연 대표는 참혹한 아비규환의 현장에 잠입해 그동안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뤄진 불법 생매장(살처분)의 실태를 세상에 공개한 장본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가 보는 한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인터뷰 당일에도 개농장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던 박 대표, 그는 7년 전 영상처럼 절규하고 있었다.
 
 ▲동물권단체 '케어(CARE)'의 박소연 대표. ⓒ위클리뉴스
 
동물 홀로코스트, 한국
 
-괜찮으세요?
 
"너무 끔찍해요. 이제까지 20년 정도 활동하면서 오늘이 가장 끔찍한 현장이에요. 얼마나 생명에게 잔인할 수 있는지, 얼마나 인간의 이익을 위한 한낱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 어쩌면 물건보다도 못한, 집안의 화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어요. 죄송해요. 제가 감정에 격해져서…."
 
-대표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7년 전 구제역 당시 돼지 생매장 영상이 떠올랐어요. 대표님과 돼지의 울부짖음이 뒤엉켜 한동안 잔상으로 오래 남았었거든요. 이 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처럼 늘 마주하는 처참한 현장, 트라우마는 없나요?
 
"물론 당연히 힘들고 가슴 아파요. 그런데 상처받고, 슬퍼하며, 분노하는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돌봐줄 수 없고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강해져야 해요. 학대자보다 강해져야 하고, 때로는 미미한 법보다 더 강한 행동을 해야 되죠. 그래야만 동물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늘 스스로 마음의 훈련을 해요. 그리고 이미 벌어진 사건보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이겨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활동가보다 훨씬 더 심해요. 활동가는 내가 일하는 만큼 뭔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끼면서 활동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치유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상황을 지켜봐야 하잖아요."
 
-맞아요. 저는 괴로워서 심지어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고 나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동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뭔가요?
 
"8살 때 정육점에 걸린 팔다리가 다 붙어있는 돼지를 보고 내가 여태 친구를 죽여서 먹고 살았구나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TV에 동물이 나온다고 하면 자다가 깰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어요. 또 반대로 엄마가 뭐 사줄까 하면 '꼬기 꼬기' 할 정도로 고기 광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육점에서 이 두 가지가 같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고기를 못 먹었어요. 또 동물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른이 되면 내가 너희를 꼭 도와줄게 생각했죠.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우연히 혼자서 1인 시위 하는 활동가를 만나면서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 후로 20여 년 활동하셨어요. 대표님이 보시는 한국사회의 현실, 어떤가요?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눈에 동물의 고통이 보이고 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채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고요. 전반적으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향상돼가고 있는데, 반대로 법이나 제도 또 이를 관장하는 공무원은 아직 대중의 인식까지 가지 못하고 있어요. 동물보호법 같은 것을 봐도 아직까지 반려동물 위주이고, 그런데 반려동물조차도 사실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또 사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여전히 아쉬워요. 동물학대의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처벌들이 쌓여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도 여전히 사람과 물건의 일로만 보거든요. 학대자임에도 사람에게는 온정적으로 봐주는 분위기가 아직 팽배한 거죠. 그래서 역시나 미미한 처벌로 끝나고 그러다 보니깐 동물보호법과 동물학대의 처벌 사례 등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요."
 
-사실 동물학대의 경우 너무 광범위해서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맞아요. 일반적으로 매일 일어나는 농장동물에 대한 폭력적인 행위들. 실험동물에 대한 잔인한 행위들. 그런데 이런 동물은 산업적 이용 대상, 즉 경제동물로 보면서 결국은 동물보호법망에서도 빠져나가고 있거든요. 또 동물쇼는 여전히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많은 동물이 인간의 이용가치에 따라 나뉘면서 다양하게 학대되고 있어요."
 
 ▲유기견 '토리'를 공식입양한 문재인 대통령과 박소연 대표(오른쪽)가 청와대 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위클리뉴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순환한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15년 만에 동물보호법을 개정(벌금형 2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시킨 '2006년 장수동 개지옥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오늘 같은 환경이었는데, 3주 동안 거의 모든 언론에서 다룰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었어요. 당시 법이 없어서 동물을 구할 수 없었고, 결국 활동가들이 절도죄를 무릅쓰고 100마리의 동물들을 강제로 구출했거든요. 우리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벌인 행동이었는데, 결국 법이 긴급한 구호활동이었다며 우리 손을 들어줬어요.
 
-케어의 대표로서 또 개인 박소연으로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최초로 현행법상 개를 도살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라는 판결을 최초로 얻어냈어요. 이 판결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개개인들의 동시다발 소송을 이어 나가는 '와치 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또 개농장을 보호소로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지난 7월 7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불법 개농장 시설의 개들을 구조하고 또 개농장을 운영했던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해 동물을 보호하는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거죠. 저는 그동안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그렇게 달려왔어요. 후배 활동가들은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가고 또 개인적인 보람과 행복함을 느끼면서 활동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개인적 소망은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만큼 바라는 것이 없어요. 모든 세상은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모든 것이 공존해요. 그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서로 질서를 맺고 살아가며 존재하죠. 저는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서 차별과 불평등, 폭력을 없애며 성장했다고 봐요. 그것이 인간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생명에게로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생명 존중과 보호는 공존의 기본 덕목이에요."
 
 ▲케어 박소연 대표(오른쪽)와 배우 김효진이 지난 7월 6일 남양주 개농장에서 개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위클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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