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갓길에는 장갑, 신발, 음료수 병, 과일 껍질 등이 있다. 그러나 갓길에는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버린 물건들 옆에는, 바로 몇 분 전까지 인간처럼 붉고 뜨거운 피를 가졌던 하나의 생명이, 걸레처럼 나뒹굴고 있다. 그것은 건너편 숲의 옹달샘으로 가고 싶었던 토끼였고,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고 싶었던 수달이었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고안된 도로와 자동차에 치어 먼지처럼 사라지는 이 땅의 생명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사진=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캡쳐

 
황윤 감독의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의 줄거리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2006년 개봉한 이 영화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인 ‘효율’과 ‘신속함’을 위한 도로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에게는 수난과 죽음의 길임을 보여준다.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은 데뷔 이래 줄곧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둔 작품을 만들어왔다.

영화는 인간의 기호(비보호 표지판과 신호등)속을 헤치고 걸어가는 거북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작고 느리고 힘없이 걸어가는 그 모습에서 앞으로 닥치게 될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인간의 욕망과 눈높이로 지어진 이기적 구조들 속에서 작고, 느리고 서툰 생명들은 힘없이 죽어간다.

거칠고 위협적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네 바퀴 달린 동물들’은 고라니, 뱀, 삵, 두꺼비, 새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먹어치운다. 감독은 그 현장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영화는 야생동물들의 죽음의 흔적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속도와 효율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태도를 고발한다.

다소 생소한 문제인 길 위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단순히 동물이나 환경을 보호하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땅에 살아가는 존재들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작은 ‘생명’들도 함께 살아감을 보여준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함께 살아감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대로 지켜질 수 없는 ‘대지의 거주자들을 위한 생존지침 5계명’은 야생동물들의 절박한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아픈 역설로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시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곳곳은 도로 건설로 파헤쳐지고 그로인한 지역발전과, 새로 개통된 도로로 인해 단축된 시간을 축하하고 선전하는 뉴스소리가 들려오고 로드킬은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고안된 도로와 자동차에 치어 먼지처럼 사라지는 이 땅의 생명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매일 같이 죽어가지만 세상은 이들의 죽음에 놀랍도록 차분하고 무관심하다. 몇몇의 활동가들이 생명과 생태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 문제에 대해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야생동물들이 사는 백두대간의 서식지 위에 계속해서 도로가 놓이고 또 넓어지고 있다. 이 땅을 거미줄처럼 덮은 수많은 도로들은 우리들에게 성장과 편리함을 줬지만 이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 땅의 생명들과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