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415개소의 생태통로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이는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 하지만 실제로 야생동물들이 생태통로를 이용해 로드킬 비율이 줄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린다.ⓒ위클리굿뉴스


도로 건설이 생태계에 주는 영향은 단순히 택지를 개발하는 것과 다르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는 동물들의 서식지를 둘로 나눈다.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서식지 파편화’라고 부른다.

야생동물들의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안방 한 가운데 길이 나고 집 마당에 커다란 벽이 세워진 꼴이다. 도로는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를 쪼개는 전기 톱날이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로드킬(동물이 도로에서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이다. 야생동물과 차량이 충돌하면 동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도 피해를 입는다.

로드킬이 늘어감에 따라 도로에 멈춰선 동물과 충돌을 피하려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들의 죽음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도로를 만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 그렇다면 야생동물들이 안심하고 지나다닐 수 있는 길쯤은 군데군데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동물들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장치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이 바로 ‘생태통로’다.
 
살리는 길 ‘생태통로’ 운영은 글쎄…

'생태통로(Eco-corridor)'란 도로, 댐, 수중보, 하구언 등으로 인해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거나 훼손 또는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야생 동식물의 이동을 돕기 위해 설치되는 인공구조물·식생 등의 생태적 공간을 말한다.

생태통로에는 식생 등이 완전히 연결되어 육상 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생태통로와 습지, 공원, 가로수 등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새, 곤충 등은 이동할 수 있지만, 육상 동물은 이동할 수 없는 징검다리식 생태통로가 있다. 조성 위치에 따라서는 선형·육교형·터널형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부터 생태통로(시암재-861번 지방도)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415개소의 생태통로가 설치·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실제로 야생동물들이 생태통로를 이용해 로드킬 비율이 줄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에서 환경부로부터 받은 2014년 이후 로드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생태통로가 설치된 곳과 로드킬이 발생한 곳의 좌표가 상당부분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도 평창군의 월정사, 진고개, 전북 남원시 정령치1, 충북 단양 죽령, 전남 구례군 시암재 등에는 생태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드킬이 많이 발생했다.

생태통로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생태통로가 들어서는 지역에 사는 야생동물의 정확한 생태특성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통로에 사람과 동물이 분리돼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거나 주변 생태계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형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용득 의원은 "현재 효과적인 생태통로를 만드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법적으로 환경부 관리 대상의 생태통로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며 "생태통로를 만들어 놓은 후 관리 및 모니터링 실적도 매우 부진하다. 환경부는 로드킬 방지를 위한 종합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선진국에선 어떻게?

스위스는 산지가 많은 국토 특성을 활용한 창의적 생태통로들이 많다. 덕분에 스위스식 생태통로 '그룬 브루케'(Grun Brucke, 녹색다리)는 유럽 전역의 모델이 됐다. 최근에는 삼림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로 우회 건설을 강화하는 한편, 출현동물을 센서로 감지해 전광판에 감속표시를 하는 '사전경보시스템'으로 사슴류의 로드킬을 80% 이상 줄였다.

독일은 도로 보다 생태통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도로가 기존 생태계를 환경영향평가 당시 예상보다 심하게 훼손했다면 사업주체가 이를 책임지고 복원해야 할 만큼 환경 관련 법규가 엄격하다. 

1990년부터 야생동물 생태통로를 건설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중앙정부-지방정부-환경단체 간 유기적인 협력이 잘 구축돼 있다. 중앙정부는 나라 전체의 생태통로를 계획하고 지방정부는 이를 설계·건설하고 환경단체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올바로 계획하고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감시한다. 각자가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생태 네트워크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경선진국들은 생태통로 조성에 10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야생동물의 생태특성을 올바로 반영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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