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우박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돌멩이 크기의 우박세례에 경기장에서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한국 대표팀의 공식 적응 훈련마저 결국 취소됐다.
 
카잔의 6월 평균 낮 기온은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날씨. 현지에서도 굉장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에 "하늘마저 돕지 않는다"며 불길한 예감이 감돌았다. 그때 한 보도를 통해 "카잔에선 누군가 큰일을 앞두고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행운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는 카잔의 풍습이 들려왔다. 그리고 '믿음'은 현실이 됐다.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2대 0의 승리를 거두며 월드컵 역사상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진은 경기가 끝난 후 한국의 손흥민이 신태용 감독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 기적'…믿음이 일궈낸 꿈같은 승리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가 열린 러시아 카잔 아레나는 뜨거운 함성과 열기로 뒤덮였다. 한국은 최강의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예상외의 선전을 펼치며 90분 내내 치열한 접전을 이어갔다. 0대 0으로 맞서며 16강 탈락 위기에 놓인 독일은 마음이 급해졌다. 독일의 부담은 한국의 기회로 찾아왔다.
 
후반 추가시간 3분, 극적인 선제골이 터졌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코너킥에 이은 상대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흐른 공을 김영권이 그대로 왼발 슈팅으로 독일의 골망을 흔들었다. 축구 팬들에게 수많은 비난을 받으며 '욕받이 수비수'로 불리던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은 두 팔 벌려 세리모니를 펼쳤다. 그사이 선제골의 비디오판독(VAR) 적용으로 추가시간은 6분에서 3분 더 늘어났다.
 
추가시간 9분은 오히려 한국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후반 추가시간 5분 44초, 주세종(아산 무궁화단)이 골문을 비우고 공격에 가담한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의 공을 가로챘다. 주세종이 길게 찬 공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독일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손흥민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전력 질주한 손흥민은 텅 빈 골문 앞에서 공을 받아 쐐기골을 날렸다. 불과 7초 만이었다. 2대 0,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제압하고 16강 진출의 발목을 잡았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외신은 일제히 "월드컵 역사에 남을 대이변"이라고 보도했다. 경기 직전까지도 FIFA 랭킹 1위의 독일을 상대로 FIFA 랭킹 57위인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1% 기적'을 바라는 것뿐"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영국의 한 베팅업체는 "한국의 2대 0 승리보다 독일의 7대 0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 '돌멩이와 전차'의 싸움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병력의 핵심이자 상징이었던 기갑부대의 '전차'는 만나는 적마다 모두 격파하며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세계는 독일 축구팀의 뛰어난 투지와 빈틈없는 조직력을 두고 당시의 '전차'에 빗대었다. 독일은 무적의 전차 군단답게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베른의 기적'을 일으킨 후 16회 연속 월드컵 8강에 진출,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한국에게 패하며 독일 전차 군단의 무패 행진은 여기서 끝났다. 이로써 독일은 월드컵 본선 참가 이래 아시아 팀에 처음으로 패했으며, 동시에 최초로 16강 진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독일의 탈락은 세계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최대 화제였다. <뉴욕타임스>는 "88년 월드컵 역사에 대이변 중 하나가 일어났다"며 "독일은 기대했던 일정보다 3주 먼저 러시아에 작별을 고했다"고 언급했다.
 
독일은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독일의 요하임 뢰프 감독(58)은 경기 직후 "너무 실망이 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을 반복하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앙겔라 메르켈(63) 독일 총리는 한국과 독일의 경기 직후 페이스북에 "안타깝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슬프네요"라는 심경을 적어 올렸다. 독일축구협회는 공식 트위터에 "말문이 막힘. 독일, 월드컵 탈락"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를 경악시킨 독일전의 승리에도 한국의 16강행은 좌절됐다. 불굴의 투지로 월드컵 역사에 이변을 남긴 이번 경기는 스웨덴, 멕시코전에서의 충격의 패배만큼 아쉬움을 남겼다. 축구팬들은 "앞선 1·2차전에선 왜 이런 경기를 펼치지 못했느냐"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던졌다. 당장 4년 뒤 열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출전 티켓을 따내 과거와 같은 뼈아픈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번 독일전을 교훈 삼아 한국 축구에 던져진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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