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유업에 대해서 몇 달 전부터 살펴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유업을 지금 한국교회에 제시하고 계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유업은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그 유업들이 그 교회 가운데 차고 넘칠 것이다. 신약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 그것이 다른 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여주봉 목사ⓒ데일리굿뉴스

 

 


그런데 여기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어떤 외부적인 행동이기에 앞서 그 행동을 하는 배후에 있는 가치관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점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갈라디아서 2장에서 잘 볼 수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 구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핵심적인 구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도 베드로를 강력하게 꾸짖으면서 한 말이다(11절).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사도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았다.”(14절), “외식했다.”(13절)고 말한다. 특히 사도 바울은 사도 베드로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말한다(16절).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사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베드로였다. 우리는 그것을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잘 볼 수 있다(행 15:7-11). 
 
그럼 무엇이 문제였는가? 사도 베드로가 이방 기독교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 기독교인들이 오니까 그들이 두려워서 자리를 옮겨 유대인들끼리 따로 앉은 행동을 두고,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강력하게 사도 베드로를 꾸짖었던 것이다. 그럼 베드로는 항상 이방 기독교인들과 식사해야 했는가?  유대 기독교인들과만 따로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면 안 되었는가? 아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베드로가 방금 취한 그 행동의 배후에 있는 가치관이었다. 베드로가 취한 그 행동의 배후에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이 자신들을 부정하게 만들고, 또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정결하게 만든다는 가치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을 반영하는 가치관이었다. 그 결과 사도 베드로는 누구보다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믿었고, 또한 그것을 가르쳤지만, 베드로의 그 행동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반영하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타락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도 베드로를 그렇게 강력하게 책망하되, 다른 말이 아닌 바로 16절의 말로 그를 책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고 그 반대로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도 어떠한 외부적인 행동이기에 앞서, 그 행동을 하는 배후에 있는 가치관이다. 갈라디아교회의 경우에도 문제는 할례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할례를 받은 그 배후에 있는 가치관에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에서 할례의 위험성을 그렇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난 다음, 곧 바로 이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갈 5:6)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정말 심각하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말로는 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정말 심각하게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그리고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 복음의 능력이 그토록 철저하게 소멸되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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