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론으로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참교육으로 회복하는 교육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김영길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경천애인의 유교사상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첩첩산중 오지에서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비행기 제작에 호기심이 많았고 금속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대표적인 기독과학자로 명성을 알리며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신앙계 제공)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편지로 지금의 아내 김영애 권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지만 그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 박사는 1974년 NASA연구원이 되면서 성경과 가까워졌다. NASA에서 첨단과학을 다루는 백여 명의 박사들이 매주 예배하며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들이 왜 기쁘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지 궁금해 성경책을 읽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아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집 근처 책방에서 구입했던 핼 린지가 쓴 <지구의 해방>이라는 책에서 그가 그동안 품었던 모든 의문들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주님을 만난 후 하나님이 예배하신 길을 따르게 돼 1978년 12월,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가 됐다.

1980년 8월 CCC(대학생선교회)에서 '세계복음화성회, 창조냐 진화냐'를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그는 유일한 한국측 강사로 활동했다. 1981년 1월에 그는 30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립한 ‘한국창조과학회’에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해외 유치(誘致)과학자로 갓 귀국한 제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또 창조과학이나 강의하러 다닌다는 색안경 낀 시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에서 ‘NASA 체크브리프 상’과 ‘IR-100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김 박사가 풍산금속과 협력해 발명한 반도체 리드 프레임 ‘PMC-102’합금 제조기술이 독일에 수출돼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 기술 수출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도 여러 연구업적을 쌓다가 1994년 순수 기독교신앙으로 교육하는 대학의 초대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총장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 느껴 학교를 시작했던 이사장의 사업상 문제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몇 달간 교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한 상황 속에 국고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잠시 전용했다가 몇 달 후 원상복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그는 53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생활 중에서도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에는 1,800여 명의 한동대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감옥 밖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53일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동대가 자동홍보 됐고, 부족한 재정들이 채워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아졌다."

20년을 한동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좁은 길을 걸어온 김 박사는 2016년 5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시편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모든 병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치료를 잘 받게 하시고 독이 몸이 퍼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박사는 UNAI Korea에서 그동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협력해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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