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 회담이 이루어지면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10년 가까이 남북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최근에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조치로 경제 재제까지 이루어지면서 통일이나 평화 정책은 먼 얘기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실시된 통일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남북한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7.8%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는데 이것은 2016년 대비 4.3%, 2014년 대비 11.5% 하락한 수치이다.
 
그런데 북한 정상이 최초로 남한 땅을 밟고 들어와서 남한의 대통령과 평화 정착에 대한 진일보한 구상들을 밝힌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한반도 통일이 성큼 다가온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통일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통일 이후 과정에 대한 대비이다. 통일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나 이제까지 통일에 대한 연구는 주로 정권이 하나됨을 의미하는 정치 차원의 통합, 화폐 및 산업 구조가 단일화되는 경제 차원의 통합에 집중되어 왔다.
 
정치나 경제 차원에서의 통합도 중요하지만, 통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포함한 사회 차원의 통합을 궁극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외형상으로 하나의 체제를 갖는다고 해서 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의 이념을 가진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통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 통합 또는 사회 통합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 ‘이후’가 중요한 것은 통일의 ‘과정’이 통일 ‘이후’의 문제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 후에 일어날 사회 통합의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는 통일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일 후 사회 통합의 문제를 고려하여 ‘선 통일, 후 통합’이 아니라 ‘선 통합 후 통일’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사회 통합이라고 하는 것이 5년 또는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통일 후 사회 통합의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간의 안목으로 대비해야 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회 통합의 측면을 염두에 두고 통일을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사회 통합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을 보았을 때 사회 통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통합 관점에서 보는 통일
 
통일은 두 체제의 통합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사회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동일한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두 체제가 통합된 사회에 살게 될 때에는 이전에 삶을 지탱해 주던 규범들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찍이 사회학자인 뒤르케임이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목격했던 서구 사회의 아노미(무규범) 상태와 같은 것이다. 뒤르케임이 사회 구조가 변한 현대의 상황을, 옛 가치와 규범과 제도가 내몰린 그 자리에 아직 새 가치와 규범과 제도를 채 들여다 놓지 못한 도덕적 진공 상태가 가지는 도덕적 문제로 본 것 같이, 통일된 이후의 사회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과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심각한 도덕적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환경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이나 가치 체계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독일처럼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사회 통합은 우리들에게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통일 후’ 전개돼야 할 재사회화를 통한 사회통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환경으로서의 ‘통일 후’의 시기에 이루어질 각 개인들의 재사회화가 완성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사회화의 과정에서 가장 효과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공동체라고 하는 준거집단의 제공인데, 그것은 공동체의 형성이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와 상호작용 그리고 소통이라고 하는 재사회화의 장으로서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 공동체 중의 하나인 교회가 가지는 사회통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 사회 통합을 위해 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다. 교회와 남북한 사회의 통합에 대한 연구들은 흔히 남북한 기독교 사이의 교류에 주목하면서 기독교간 교류가 증대되면 자연히 이질화가 약화되어 남북 기독교간에 통합을 이루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하여 사회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주장에서는 대부분 ‘사회’를 정치와 경제, 또는 (좁은 의미의 문화 예술의 차원에 국한되는) 문화와 구분되는 일반인 또는 서민의 영역이라는 매우 좁은 의미의 개념으로 이해하며 사회 영역의 통합을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은 보다 근본을 이루는 뜻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규범 및 가치와 관련된 의미 체계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통일 후 교회의 역할

이질적인 두 집단 사이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역할, 그 중에서도 종교 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사회 통합의 정치 제도나 경제 체제와 같은 체계상의 통합이 아니라 생활 세계 또는 시민 사회 영역에서의 통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는 종교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에는 동독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동독과 서독 지역의 교회들이 통일 이후에는 그러한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말았다.
 
통일이 되자 동독 지역의 교회들이 더 이상 서독 지역 교회들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서독 지역 교회들과의 관계를 끊었고, 정부 차원의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교회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회 통합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단순히 분단된 지역에 있는 교회들 사이의 교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통합은 단순히 동질성을 회복하거나 기존 체제에 적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질성을 인정하고 각각의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러한 가치에 의한 재사회화를 하는 것이 통일 후 사회 통합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독일 통일과 통일 이후 과정에 대해 연구하기 위하여 독일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몰트만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회가 일자리 없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는 시장경제가 줄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주는 곳이지요. 공산주의 국가들은 평등은 있지만 자유가 없고 서구에서는 자유는 있지만 평등은 없는 상황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연결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그 영향력이 단순히 종교단체의 하나로서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 영역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가진 보편주의 사상과 관행을 더욱 계발시키고 그것을 통일 한국의 사회 구성 원리로 제시해 그에 근거한 사회 통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존의 가치를 초월해 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및 규범이 통일된 국가의 가치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면서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의 가치, 신학이나 신앙의 표현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성서의 원리로 한민족 전체를 묶어 줄 수 있는 공통의 가치 의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두 사회의 구성원들의 감성을 담아 표현하는 데 걸림이 없는 새로운 언어가 창조돼야 한다.
 
이럴 때라야 한국의 기독교는 진정으로 한국인들의 심성과 습속 깊이 자리 잡아 결속시키는 하나의 ‘시민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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