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칼럼]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자가복음의 유업 3

여주봉 목사(포도나무교회)

등록일:2018-03-12 10: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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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이사야 하반부에는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들이 나타나 있고, 그 유업들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들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교회는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신약 교회의 기초: 십자가의 복음

신약 교회의 기초는 한 마디로 말해서 십자가의 복음이다. 우리는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여기의 “터”는 교회의 터, 즉 교회의 기초를 말한다.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말할 때, 그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이다.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당연히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말씀하신 교회의 기초와 정확하게 맥락을 같이 한다(마 16:15-18).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그런데 나는 더 나아가 고린도전서 1-3장의 문맥을 보아도 그렇고, 성경 전체적으로 신학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사도 바울이 교회의 기초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고린도전서 3:11 속에 고린도전서 1:30과 2:2이 포함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반드시 고린도전서 1:30과 2:2의 삶을 살아야 비로소 그 교회의 기초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11에서 말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바꿔 말해서, 성도들이 고린도전서 1:30과 2:2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적으로 그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의가 되시는 삶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신약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려면, 성도들이 예수님이 그들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교회의 기초는 실제적으로는 전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인 교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유업은 그 교회 가운데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른 부분은 정확하게 동일한 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다. 교회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것이 교회의 기초이고, 우리 모든 신앙의 기초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그 진정한 의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려면,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 철저하게 버려져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빌립보서 3장이다. 그것은 학자들도 다 동의하는 바이고, 그래서 개역개정 한글 성경도 빌립보서 3장의 제목을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붙이고 있다. 흥미롭게도 영어 NIV 성경은 그 제목을 “No Confidence in the Flesh(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붙이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의지하는 것과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같이 간다.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을 성경은 개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 3:2).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강력하게 정죄하고 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다 추가로 할례를 받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된다는 유대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율법주의적인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동시에 육체를 신뢰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육체를 신뢰하는 것과 똑같다. 육체를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이토록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고 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개는 가장 혐오스러운 짐승으로 이해되었다. 참고로 이 문제가 갈라디아서에 뿐 아니라, 여기에도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거짓 복음의 문제가 초대교회 당시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의 거의 모든 서신서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사도 바울의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갈 5:11)라는 말을 보면, 그 당시 이 거짓 복음의 문제가 매우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오직 예수’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은 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복음에서 그 능력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다(고전 1:23-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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