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목사ⓒ데일리굿뉴스

성경에는 꿈 이야기가 많다. 아브라함도 꿈의 사람이었고, 야곱도, 요셉도, 솔로몬도, 다니엘도, 선지자들도 꿈의 사람이었다. 요한계시록도 밧모섬에서 요한이 보았던 꿈 이야기이고, 사도행전도 환상, 꿈, 예언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분이다. 요엘서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성도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성령이 주시는 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꿈이 있어야 한다. 교회도 꿈이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것처럼 믿음의 사람은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왜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자살은 앞으로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슬픈 사람은 시한부 생명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파산한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반갑지 않고, 미래가 두렵고, 삶의 방향이 없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빛이 다르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도 결국은 꿈의 차이다. 꿈이 큰 사람이 큰 사람이 된다. 꿈이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꿈 하면 우리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요셉이다.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꾸었다. 한번은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요셉의 단이 일어서니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요셉의 단에 절하는 꿈이었다. 두 번째 꿈은 부모를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형제들을 상징하는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요셉은 꿈을 꿀 때마다 형제들에게 말했고, 형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했다. 그때부터 요셉은 ‘꿈꾸는 자’로 불린다. 비록 요셉은 꿈 때문에 미움을 받지만, 열한 형제와는 다른 인생을 산다. 결국 요셉의 꿈은 성취되었고, 요셉은 형제들을 다 먹여 살리고, 나라와 열방까지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된다. 

사전을 찾아보면 꿈을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잠자는 동안에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을 꿈이라고 한다. 그리고 희망 사항, 목표 등도 꿈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표와 바라는 것이 클 때 ‘꿈이 크다’라고 말한다. 요셉이 꾼 꿈은 잠자는 동안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꿈을 통해 요셉에게 미래를 보여 주셨다. 그 꿈은 요셉의 평생 꿈이 되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계속 무엇인가를 향해서 자신의 변화를 추구한다.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계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는 곳곳마다 변화를 일으키셨다. 유대종교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하셨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 왜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고 할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져 생매장 당할 뻔했다. 간신히 살았으나 은 20냥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된다. 인신매매 당한 것이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꿈 때문에 겪는 시련이었다.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동침하자고 조르는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거절한 결과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모두 꿈 때문에 일어난 고난이었다. 꿈이 크면 시련도 크고, 꿈이 작으면 시련도 작다. 

그러나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았다. 절망하지 않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종살이 할 때도 팔려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곳에 보내셨다고 생각했다. 모든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었다. 꿈을 주신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 결국 요셉은 꿈 때문에 시련을 겪었지만 꿈 때문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요셉의 꿈은 13년 만에 이루어진다.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정말 극적이다. 한 순간에 죄수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다. 형제들이 양식을 사러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한다. 아버지도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소쩍새는 많은 시간을 울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품어진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때로는 바람 때문에 항해에 큰 방해가 되어도, 오히려 그 바람 때문에 그 배는 더 빨리 소망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에 요셉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는 미쳐 버렸거나 화병에 죽었을 것이다. 꿈이 있었기에 13년의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꿈이 인생을 결정한다. 요셉처럼 꿈꾸는 자가 되자.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