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시 한 야산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고준희(5)양의 친부 고모(37)씨가 준희 양의 시신을 대신해 마네킹을 묻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연합뉴스


무술년 희망찬 새해를 맞았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아동학대 소식에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지난 11월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고준희(5)양이 지난달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친부 고모(37)씨와 내연녀 이모(36)씨는 준희양의 양육을 맡은 지난해 1월부터 준희양에게 심한 폭행과 학대를 일삼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광주에서는 20대 엄마가 불을 내 아이들을 숨지게 한 일이 발생했다. 정모(23)씨가 자택에서 담뱃불을 이불에 비벼 끄다가 불을 내, 방에서 잠자던 4세·2세 아들과 15개월 된 딸이 화마에 희생당했다. 무엇보다 화재 직후 어린 3남매를 방치하고 홀로 대피하는 비상식적인 행동과 진술 번복 등 정씨에게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원영이 사건' 이후 잔혹한 아동학대 잇따라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2015년 '인천 맨발 소녀 탈출 사건'과 2016년 경기도 평택에서 발생한 '원영이 사건'으로부터 촉발됐다. 특히 한겨울 영하의 날씨 속 차디찬 욕실에 갇혀 락스와 찬물 세례를 받다가 홀로 숨진 신원영(7)군은 당시 한국 사회에 공분을 일으켰다. 원영군이 친부와 계모로부터 받은 끔찍한 학대는 단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잔혹한 아동학대의 서막이었다. 
 
'원영이 사건'을 계기로 그해에만 십 수건의 아동학대가 드러났다. 이중에는 중학생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무려 11개월이나 시신을 미라로 방치한 친부와 계모도 있었다. 심지어 친부가 목사로 밝혀지면서 교계와 크리스천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끔찍한 아동학대 문제는 더 이상 한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전반의 어두운 일면으로 자리 잡았다. 
 
예방 위한 다각도 정책과 매뉴얼 시급

이후 정부는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과 대응 매뉴얼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아동학대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정부의 노력에 그동안 숨겨져 있던 아동학대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죄가 드러난 것에 비해 정작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학대의 예방과 조기발견은 여전히 미흡해 아이들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조차 기대에 미치지 못해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서적 학대를 넘어 살인과 시신 훼손·유기 등 학대 방식과 행위가 날로 잔혹하고 대범해지며 패륜적인 수준에 이르자 단순히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식 변화와 더 나아가 사회적 관심과 책임이 촉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의 예방 및 근절을 위해서는 준비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1월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발표한 '2016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자는 △친부 8,295건(44.4%) △친모 5,923건(31.7%) 등의 순으로 80% 정도가 부모였다. 
 
아이가 믿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부모에게 오히려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자녀를 부모 소유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그릇된 관습과 개인·이기주의의 팽배 속에 미성숙한 인격은 끔찍한 아동학대의 위험을 이미 예견했을지 모른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정한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와 가정의 올바른 역할, 정부와 사회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매뉴얼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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