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부터 3박 4일간의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 결과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특
 ▲김형석 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역사학 박사 ⓒ데일리굿뉴스
히 베이징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중에 중국을 대국이라 칭하고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면서 "한국도 소국이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발언한 부분을 놓고 '치욕적인 사대주의'라고 개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중관계를 복원시킨 '명연설'이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문 대통령 연설이 동방예의지국의 겸양지덕을 보여준 외교적 수사도 아닌 마당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트럼프 앞에서는 미국을 칭송하고, 시진핑 앞에서는 중국을 칭송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외교 현실을 보면서, 400년 전 '광해군의 등거리외교'가 떠오른다. 17세기 초반 조선의 15대 국왕이던 광해군이 처한 상황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비슷하다. 당시 조선은 '부모의 나라'로 섬기던 명과 '오랑캐'로 여기던 후금 사이에 끼였는데, 명은 쇠락하고 후금은 떠오르는 형국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왜의 위협 역시 상존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절묘한 등거리 외교를 시행하였고, 그로 인해 전쟁을 비껴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시의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적 경쟁력을 지녔고, 미국과 중국을 당시의 명과 청에 비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무기 위협 앞에서 국가안보를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 상황과 대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25%를 넘는 경제적 상황이 맞물린 오늘의 현실에서, 광해군의 등거리외교가 보여준 지혜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광해군이 몰락한 후의 결과이다.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광해군의 실리 위주 외교정책을 '숭명반청'의 명분을 내세워 배척했으며, 그 결과 조선은 병자호란을 당하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이렇듯이 강대국과의 외교는 국가의 생존을 가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처럼 바짓가랑이 밑을 기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정책과 전략이 어떠한지를 열강들이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파악하며, 우리나라 역시 그들의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는가를 상대방이 다 아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직도 광해군의 등거리외교가 열강을 상대로 한 국제정치의 텍스트라도 되는 양 거론되는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트럼프의 동아시아 순방기간 중 일본은 굴욕 외교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저자세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트럼프의 계산서는 냉정했다. 대한민국의 대미·대중 외교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무너진 추의 균형은 쉽사리 맞출 수가 없다. 우선 위기를 모면하려고 잘못 틀을 만들어놓으면 그것을 고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때마침 오래된 서류철에서 발견된 것 같은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북한 분할 지도'가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중, 미·중·러·일 간에 한반도 지도를 놓고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의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허세보다 당당함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광해군의 등거리외교'보다는 '서희의 당당한 담판외교'를 보고 싶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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