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남아 기다렸지만, 끝내 찾을 수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유가족들은 결국 유품을 모아 장례를 치렀다.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가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과 서울에서 진행됐다.
 
미수습자 5명 장례식 치러져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가 참사 1314일만에 마지막으로 치러졌다. 단원고 양승진 교사, 박영인 군, 남현철 군 등 3명의 장례식이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에서 진행됐다.
 
발인식 및 화장식에는 고인들의 가족, 제자, 동료 교사, 친구 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같은 시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고 권재근, 권혁규 부자의 발인이 치러졌다. 권 씨 가족은 참사 당시 감귤 농사를 지으러 제주도로 이사 가던 중이었다. 혁규 군의 여동생 지연양만 홀로 남게 됐다.
 
유골 조각 조차 찾지 못한 이들의 관에는 선체 수색과정에서 발견된 가방과 옷 등 유품이 채워졌다. 양승진 교사는 그마저도 없어 생전에 학교에서 쓰던 물품을 넣었다.
 
이들 5명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미수습자 신분으로 세상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유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3년 7개월까지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기다렸지만 선체 수색 마무리 단계까지 소식이 없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16일 전라남도 목포 신항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 "세월호 선체 수색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지금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식이 모두 끝이 났다. 참사는 2014년 4월16일 단원고 학생 325명 등 모두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발생했다.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중 295명의 시신이 인양됐다.
 
4명은 사고 발생 1098일만에 시작된 선내 수색에서 유해가 수습됐으며, 단원고 양승진 교사 등 5명은 끝내 유해 발굴에 실패, 미수습자로 남게 됐다.
 
기독교계 "영원한 안식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할 것"
  
유가족들의 어려운 결정과 눈물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기독교계도 위로를 전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위로서신을 통해 "미수습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 되고 싶다던 그 처절한 소망과 작디 작은 뼛조각만이라도 가슴에 품어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마저 이루지 못한 채 무너져버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참담함의 크기를 우리는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면서 "다섯 분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하며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 장헌권 목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왜 가만 있으라고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이유를 알 수 없어 미수습자 다섯 분과 단원고 25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아픔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우리가 추모를 떠나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진상 규명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며 "그게 하늘의 별이되고 바람이 된 자녀들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는 "시신없는 입관식에서 빈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보며 마음이 찢어진다"면서 "실종된 가족을 가슴에 묻으면서 시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세월호를 목포항에 남겨두고 떠났다"고 전했다.
 
이어 "세월호 가족들이 우리를 배려하다니 부끄럽다"면서 "끝까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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