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칼럼] 세심(洗心)은 "내 탓이오" 안에 있다

김성윤 교수(단국대, 객원 논설위원)

등록일:2017-11-17 18: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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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하고 착한 것만 보고 살면 천당에 갈수 있을까? 좋은 노래만 듣고 염주만 돌리고 살면 극락에 갈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죄를 짓지 말고 혹여 죄를 지어도 마음의 죄업을 매일매일 깨끗이 씻어야 한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성당을 비롯한 오래된 대형 교회에서는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
▲김성윤 교수ⓒ데일리굿뉴스
을 그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을 볼 수 있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머지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일상 속 묵은 마음의 때를 벗긴다는 의미의 세심(洗心)이란 말은 교회뿐만 아니라 마을 이름에서 또는 다리이름까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세심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난세를 씻어내는 명상을 그곳에서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아예 강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고 하였다. 인도인들의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은 삶 그 자체임을 목격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브라만교도의 한 수행 방법으로 하루 세 번씩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데 하루 세 번 목욕을 하면 지은 죄업을 모두 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죽은 사람을 이곳에서 화장하여 골분을 강물에 뿌리는 것 또한 모든 악업이 소멸되어 좋은 곳으로 환생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심지어 골분을 뿌린 강물로 차까지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불교 수행자인 한 비구니 스님이 보았다. 그래서 목욕하는 브라만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있소?”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요.”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정말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오?” “물론이오. 주위를 보시오. 다들 이 신성한 강에서 몸을 씻고 있지 않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강의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해탈에 들겠소.” 라고 한비구니 스님이 말했단다.
 
오염된 마음을 깨끗이 씻고 싶은 것이 인간의 원천적인 간절한 소망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의 이상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너도 나도 죄인인데도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네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야를 떠나 입장이 바뀌면 현실을 보는 시각과 사회문제 해결방법까지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서슴없이 네 탓 타령이다. 성경의 이사야서 제 59장 1절에서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고, 질타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일상적으로 죄를 지으며 성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곳을 좀 더 살펴보면 너희 손바닥은 사람을 죽인 피로 더러워졌고 너희 손가락은 살인죄로 피투성이가 되었구나! 너희 입술은 거짓이나 지껄이고 너희 혀는 음모나 꾸미며 터무니없는 것을 믿고 사실무근한 소리를 지껄인다. 정의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이나 품어 까려는 것들 거미줄을 치려는 것들, 그 알을 하나만 먹어도 사람은 죽고 그 알을 누르거나 밟아 터트리면 독사가 나온다.

그들이 치는 거미줄로는 옷을 만들지 못하고 천을 짜서 몸에 두르지도 못한다. 그들이 한다는 것은 잔악뿐이요, 손으로 한다는 것은 횡포뿐이다. 그들의 발은 나쁜 짓이나 하러 뛰어다니고 죄 없는 사람의 피나 흘리러 돌아다닌다. 잔악한 계책을 구며 닥치는 대로 빼앗아 먹고 짓부수어 평화의 길은 아득한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어찌 정의가 있겠는가?
 
빛을 기다렸는데 도리어 어둠이 오고 환희를 고대 하였는데 앞길은 깜깜하기만 하다. 우리는 담을 더듬는 소경처럼 되었고 갈 길을 몰라 허둥대는 맹인이 되었다. 한낮인데 황혼 무렵인 듯 발을 헛딛기만 하는 모양이 몸은 피둥피둥한데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정의는 없고 구원을 바라나 구원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나와 있다. 이런 죄를 씻고자 사람들은 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지은 죄를 세심하기를 기원하려고 교회나 절로 간다.
 
그렇다고 우리의 죄가 씻어졌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터라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부득이 죄를 지었다면 남을 위한 봉사로 되 갚아야한다. 내 탓이오,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세심일 것이다.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란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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