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목사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 한 공원에 앉아 있었다. 공원 관리인은 그가 노숙자인줄 알고 '당신 누구요?'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때 쇼펜하우어가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제발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좋겠소.'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시각장애인이 등불을 들고 밤길을 걸어가다가 어떤 사람과 쾅 하고 부딪힌다. 시각장애인이 화를 내며 말한다. '당신은 이 등불이 보이지도 않소.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러자 길 가던 자가 말한다. '나는 바로 그 질문에 답을 찾고 있는 사람이오' 모든 철학과 모든 종교의 출발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다. 목적을 알아야 고난도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공부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생기면 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도 물리치고, 놀고 싶은 유혹도 이길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목적을 다른 말로 하면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가수,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 인기의 자리에 오르는 연예인들이 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살로 인생을 끝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 뭐가 아쉬워서 자살하느냐고 말한다. 세상의 목적은 다 그렇다.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갈 때는 힘든 줄도 모른다. 옆도 보지 않고 뒤도 보지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격이 오래 가지 않는다.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것을 얻으려고 내 인생을 다 바쳤단 말인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삶의 목표와 방향이 분명할 수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방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죽음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 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 박사라도, 생물학 박사라도,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 사람이라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답이 없다.
 
그런데 성경은 너무나 분명하게 내가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사후에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최고의 존재이다. 마태복음 5장 13~14절을 보면 나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을 영접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요한복음 15장 15절을 보면 나는 그리스도의 친구이다. 로마서 6장 22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로마서 8장 14절과 갈라디아서 4장 6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나의 영적 아버지이다. 로마서 8장 17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을 자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을 보면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을 보면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5절을 보면 나는 빛의 아들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나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내가 누구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낫 놓고 기역을 모르고, 지게 놓고 A를 모르는 할머니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유대인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 공회가 요한에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눅3:15) 그래서 세례 요한이 정말 그리스도인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한이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존재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엘리야냐 선지자냐 하고 묻자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나는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라고 말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에게도 분명히 말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세례 요한은 자기가 누군지를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마11:11) '네가 누구냐?' 이 질문에 세례 요한이 확실하게 대답한 것처럼 우리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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