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 칼럼]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라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등록일:2017-07-07 17: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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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데일리굿뉴스
고넬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고넬료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를 만난 그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주인 고넬료에 대하여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이라”(사도행전 10:22)고 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2절에서 고넬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것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의 평가와 사람의 평가가 일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 평일의 모습과 주일의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하인과 부하직원으로부터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온 유대 족속이 칭찬하는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당신의 가족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계십니까? 당신의 자녀는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당신의 아내는?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저는 우리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아니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진짜 그리스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을 뛰어 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넬료를 찾아간 베드로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만난 베드로는 그들을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를 향하여 떠났습니다.(사도행전 10:23) 그런데 사도 중에 사도인 베드로가 이방인 중의 이방인으로 자신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점령군의 지휘관을 찾아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났을 때 “이방인인 당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 위법인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셨기 때문에 부름을 사양하지 않고 왔다”고 말했습니다(28-29절a). 이것을 보면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지켜온 전통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림
 
마침내 베드로 일행은 이튿날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고넬료는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0:24).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잔치를 베푸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의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모은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베드로가 확실히 언제 도착한다는 기약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아 함께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 함께 모여 베드로의 말씀을 듣자”는 고넬료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고넬료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삶이 참 중요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인생을 살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원수를 맺고 담을 쌓고 살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고넬료가 베드로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하여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말씀을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엎드려 절함
 
베드로가 마침내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고넬료는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사도행전 10:25) 그러면 왜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였을까요?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한 것은 베드로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성품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유명해서도 아닙니다.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을 한 것은 자신이 기도 중에 본 환상과 천사의 지시 때문입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 하는 시몬을 청하라.” 베드로를 청하라는 말은 단순히 만나만 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자신에게 전해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을 한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존귀한 자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신 저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고넬료는 베드로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를 통하여 주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사모함 때문에 그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고넬료가 이렇게 자신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할 때 베드로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베드로는 일으켜 세우며 “나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26절). 베드로는 그 순간을 즐기며 자신의 신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베드로를 만난 고넬료는 왜 우리가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지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사도행전 10:33b). 우리는 지금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이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당신을 통하여 주시는 그 모든 말씀을 듣고자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그 말씀이 믿는 가운데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로 받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길가에 떨어진 씨를 공중의 새가 와서 먹어버렸는데 그 새를 마귀라고 했습니다(누가복음 8:5, 12). 마귀가 하는 주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그 말씀을 빼앗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듣고자 모여 있다고 말한 다음 더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b.) 고넬료는 주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선포되는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신전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시편 107편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했습니다. 저는 모든 성도들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고 그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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