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17개월째 억류됐다가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의 석방을 위해 미국과 북한이 노르웨이와 뉴욕, 북한에서 잇따라 당국자 간 접촉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웜비어의 석방을 위해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 지난주 뉴욕에서 잇따라 북측과 사전접촉을 가졌으며, 12일 북한을 방문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의 석방을 요구했다.
 
비록 억류된 자국민 석방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조셉 윤 특별대표의 방북은 지난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고위당국자의 첫 방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외교가는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듯 보였던 북미 양측이 잇단 당국간 접촉을 통해 상호 의사소통의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윤 특별대표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만큼 웜비어 석방 문제뿐 아니라 핵·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서도 북측과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웜비어를 석방한 북한도 억류자 석방 이상의 계산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북미 양측이 당국간 대화의 문을 비공식적으로나마 연 만큼 이달 말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을 거친 뒤 대북 협상에 대한 당사국들의 모색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경우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풀려났다는 점에서 북미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속단하기 쉽지 않다.
 
과거 북한은 억류자 석방을 대외관계의 활로를 만들거나 북미 대화의 계기로 삼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 왔다.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비난 목소리가 높았던 2009년 8월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유도했고, 결국 억류돼있던 미국인 여기자 유나 리·로라 링을 석방했다.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당시 미국 국가정보국장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를 석방한 것은 북미관계 돌파구 마련에 억류자 석방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웜비어 건은 당사자가 최악의 몸상태로 풀려났다는 점에서 이들 사례와 동렬에 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은 북한대로 웜비어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급히 석방할 필요성을 느껴 미국과의 대화를 요청했고, 미국도 일단 시급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과거 빌 클린턴, 지미 카터(이상 전직 대통령),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 중량급 인사들을 '미국인 석방 사절'로 받아들였던 북한이 이번에는 고위급 실무자에 해당하는 조셉 윤 특별대표를 받아들인 점은 이번 사안이 북미관계의 카드로 사용하기 쉽지 않은 측면을 감안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혼수상태가 된 경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내 대북 여론은 석방 자체보다는 억류 미국인이 극단적으로 악화한 몸 상태로 풀려난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결국 미국 내 대북 여론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악화할 경우 '러시아 스캔들'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한 대북 접근에 나설 여지는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14일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조셉 윤을 파견했다는 점은 북미가 정치·군사 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논의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낳는다"며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의사결정 구조와 북핵 등 현안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양 교수는 "병이 난 사람을 석방했다는 점은 정치적으로 '억류 미국인'을 석방한 과거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르다"며 "북미간에 불신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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