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박사
강대제국들의 지정학적, 정치적 패권 각축장이 되어버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신앙공동체에게 예수님이 몸소 실천하시고 약속하신 평화의 비밀을 구현하라는 <평화사역의 소명>에 대하여 새롭고 예민한 성찰을 요청한다. 우리는 이 평화소명을 위하여 영적 해석학(Spiritual Hermeneutics)을 도입하고 싶다. 영성을 토대로 하는 시운의 분별력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인류역사는 패권제국들이 평화를 만드는 세력이라는 신화를 옛날이나 이제나 믿어왔다. 이것이 문명사의 핵심적 논리였다. 그리고 세계의 종교들은 이 제국세력을 신격화하는 “영적” 역할을 하여 왔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신성로마제국이 그런 것이었고 이 역사적 족적은 오늘도 세계사 속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평화는 이런 제국의 평화(Pax Imperium)와는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이것이 시운을 분별하는 평화를 위한 영적 해석학의 기본일 것이다. 평화란 지구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한 폭력의 군사체제에 의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분별이다. 동북아에서도 이런 역사는 있었다. 중국의 진시황제도, 일본의 천황제 식민패권도, 러시아의 제국도 그리고 지난 세기 이래 미국도 제국적 지배행태를 사이비 종교적 권위를 동원하여 패권주의적 정치/군사권력을 신격화하고 절대화하여 왔다. 지난 세기 이래 이러한 경향은 이데올로기의 형태를 띤 사이비 '종교성'이 제국적 세력을 절대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래서 '적'을 악마라고 호칭하였다.
 
이런 소용돌이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아니 전 세계를 뒤덮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대 세계전쟁들, 냉전체제 대결전쟁들이 연속 되었던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평화의 도>가 아니다.
 
지극히 불행하게도 한반도의 우리민족과 제국체제하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전쟁과 학살과 전멸적 파괴의 경험을 하여 왔다. 이런 거대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민족은 비극적 희생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영적으로 성찰하여야 하는 것은 제국의 권력이나 국가 군사체제는 평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영적 해석학을 동원하지 않아도 본래 권력이라는 것, 특히 제국이나 국가권력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민족은 지난 세기 이래 제국적 패권강국의 각축 사이에서 그리고 분단체제에서 살아오면서 뿌리 깊은 상처를 받고 희생하여 온 민족이다. 현금도 우리는 이념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그리고 외형적으로, 내면적으로 <분단적 존재>로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관찰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영적으로 각성하고 영적으로 치유하며 깊고 강렬한 영적 행동을 통하여 정의에 기초한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동산으로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신앙공동체에게 주어진 사명, 즉 <분단적 존재>를 극복하는 사명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적으로 교파와 신학적 차이, 종단적 경계, 인종적 민족적 차별과 적대관계를, 심지어는 이념적 적대관계를 극복하는 평화의 심오한 영적 사역이다. 이것이 모든 적대적 관계를 극복하는 신비로운 영적 비밀이다. 이는 심오하고, 이는 초월적이며, 이는 모든 생명체에게 새로운 생명의 향연에 이르게 하는 비밀일 것이다. 이것이 시운을 분별하는 <영적 해석학>에의 조촐한 초대이다.

*본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발송하는 평화칼럼으로 평화통일연대 홈페이지(http://www.cnpu.kr/44)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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