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에 한센병에 걸려 사람들의 조롱과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김흥수 장로(원당반석교회). 여러 차례 죽음을 시도했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던 그에게 누나가 내민 성경책 한 권은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소록도로 들어가 하루하루 기도와 찬양으로 살던 어느 날, 기적처럼 한센병이 나았다. 후유증으로 인해 지체장애인으로 살고 있지만, 김 장로는 자신의 삶이 '덤'이라 감사할 따름이라고 주저 없이 고백한다. 신앙계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공모한 '간증수기'에 입상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만나보자.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소록도 입구에 세워진 팻말. ⓒ데일리굿뉴스

'하늘이 내리는 큰 벌, 천형(天形)'으로 알려진 한센병. 김흥수 장로는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도 격리된 채 살았다. 그는 골방에서 밥도 따로, 잠도 따로,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다. 손과 발은 변형되고 눈썹도 모조리 빠졌다.
 
한번은 상처 붕대를 끌러보니 벌레가 한 주먹이나 나왔다. 김 장로는 벌레가 병 때문에 자신의 몸 속에서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몰래 땅 속에 묻었다며 그 때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마을에서는 사람만 모이면 한센병에 걸린 내 얘기로 온통 수근거렸다"며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어린 나이임에도 도저히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독약을 먹어도 보고 목을 매어도 봤지만 죽는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가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누나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전해줬다. 방에서 하는 일이 없으니 밥 먹듯이 복음서를 읽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이 한센병 환자를 고치셨다고 적혀있었다.
 
김 장로는 "성경에는 한센병이 치유된 기적이 68번이나 기록돼 있다"며 "그 때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이 내 병도 고쳐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살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19살 되던 해에 그는 한센병 약이 풍부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소록도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대전에서 소록도까지 간 길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과 같은 '고행길'이었다. 그가 버스 뒷자석에 타자 승객 중 누군가가 왜 한센인을 태웠냐며 고함을 쳐서, 결국 그는 버스 조수에게 끌려 차 밖으로 내팽개쳐지기도 했다.
 
겨우 도착한 소록도는 낙원 같았다. 그는 소록도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하나님께 매달리고 찬양했다. 김 장로는 "그 때는 정말 일주일에 11번도 더 교회에 갔다. 오직 신앙만이 내가 사는 이유이자 힘이었다. 피곤해서 새벽 찬양대에 빠지면 하루 종일 괴로워 교회 찬양대석에서 자고 찬양을 한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성경을 읽을 때 가졌던 소망은 20년도 더 지나서야 마침내 현실이 됐다. 한센병이 다 나은 것이다. 그는 10년 만에 아내와 함께 소록도를 나와 경남 함안군에 정착했다. 김 장로는 교회 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김 장로는 불교를 믿으며 평생 살아온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40여년 간 매일 새벽기도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암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다.
 
"전도할 기회는 이 때가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께 '아버지, 예수 믿으세요.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미국대통령도 그 사람들이 다 바보라 예수 믿습니까?'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며 '나 예수 반대 안 한다'고 말하셨죠."
 
아버지의 진료차트를 보니 기독교라고 적혀 있었다. 김 장로는 아버지 마음이 변한 것을 알게 됐다. 목사님을 불러 세례를 받을 것을 권했고, 아버지는 병상에서 세례를 받은 후 그 날 돌아가셨다.
 
이제 한센병은 다 나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 김흥수 장로는 지체 2급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치료해주셨기에 지금 내 삶은 덤으로 받은 것이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주님께 쓰임 받는 종으로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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