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 칼럼]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등록일:2017-05-11 17: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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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데일리굿뉴스
영이 아닌 몸의 부활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 19절 말씀입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모인 곳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날 밤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라고 물으시고 그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셨습니다(눅 24:42-43).
 
그러면 왜 예수님은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는 손과 발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셨을까요? 영은 만질 수 없고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그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영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이 아닌 그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다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신앙고백을 할 때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라고 고백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너희들은 나를 버리고 떠난 배신자야”라며 꾸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빈 무덤까지도 보고서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을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며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평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평강입니다. 샬롬입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관심이 있는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평강이고 또 다시 강조하신 말씀이 평강인 것을 보면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바로 평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돈이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건강도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평강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 평강이 주님의 관심인가?
 
첫째로, 현실적으로 지금 평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저녁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 모임의 장소는 자주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마가의 다락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굉장히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습니다. 왜 모여 있는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찾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제자들은 모인 곳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움 가운데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샬롬, 평강이었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문을 꼭꼭 걸어 잠근채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업에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내 자녀가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오고 아이비 리그를 다닌다 할지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성공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 가운데 살아도 평안이 없다면 축복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평안이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평강이 부활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4:2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안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없는 평안입니다.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도 눌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왜냐하면 이 평안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안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평안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은 부활의 열매입니다.
 
셋째, 평강을 가진 자만이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보냄을 받은 자는 반드시 평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평안을 가진 자만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가진 자만이 가서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문제와 상황 앞에서 두려워 떨면서 이 복음을 전한다면 누가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 겁을 내는데 누가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안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샬롬, 평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찾아오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관심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최고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성공입니까? 건강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최대관심은 평강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문제 앞에서, 죽음 앞에서, 실패 앞에서, 인생의 파도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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