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훈 소장 ⓒ데일리굿뉴스
가족은 영화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코드이다. 굳이 가족이 중심 서사가 아니라도 영화 속에 가족은 늘 이야기의 중심이다. 액션영화(용의자)에서도, 재난영화(판도라)에서도, 코미디(아빠는 딸)에서도, 심지어 좀비영화(부산행) 속에서도 말이다. 진한 가족애를 다룬 영화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흥행 영화들의 키워드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는 이상한 가족의 풍경을 그린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다. 연애와 결혼이 분리된 새로운 풍속도를 그린 <결혼은 미친 짓이다>, 중산층 가족 관계의 붕괴를 드러낸 <바람난 가족>, 일부일처 제도의 파격적 해체를 상상한 <아내가 결혼했다>, 사회적 붕괴로 온 가족이 할머니에게 붙어사는 <고령화가족> 등이 그 예다.

이런 영화들이 그려낸 가족은 분명 근대화 이후 표준화된 소위 ‘핵가족’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다. 가족은 역사 속에 늘 진화해온 것이었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의 제목이 말해 주듯 인류는 역사 속에 늘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탄생’시켜 왔다. 흔히 ‘가족 같은 공동체’란 말을 하곤 한다. 가족은 모든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 모습을 반영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교회 역시 가족은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으로 비유된다. 서로가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호칭은 그 대표적 일례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그 가족은 상당부분 붕괴되었다. 그러니 가족 같은 공동체가 가당키나 하겠나? 오히려 가족 구성원끼리도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을 강요받는 지경이니 말이다. 각자도생 개인주의 속에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성과로 인정받는다. 이는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믿음의 가족은 근대가족 붕괴의 시대 속에 어떻게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꾸어가야 할까?

새로운 가족 개념을 보여주는 한 영화를 소개하겠다. 작년에 개봉해 조용하게 화제가 된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여섯 자녀들에게 세상의 교육제도와 가치를 부정하고 자연 속에 산다. 여기에서 칼 한 자루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능력과 체력을 키우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독서와 (당혹스럽게도 세세한) 토론을 통해 또래보다 월등한 지식과 가치관을 심어준다. 이런 가족이 과연 현실 속에 가능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가족이 현실과 사회 속의 충돌과 갈등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몰아가고, 이로 인해 끈끈했던 가족관계가 분열되는 위기도 겪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 가족 구성원들이 지혜로운 고집과 타협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공동체 같은 가족’이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가족은 시대 풍조를 쫒으며 붕괴되고 있다. 자본은 사랑이나 가족의 개념마저 불손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드러낸다. 친구가 연인보다 더 나은 점은 무엇일까? 친구는 오래될수록 삶의 서사가 풍성해지고 관계가 더 깊어지지만, 연애는 시간이 지나며 권태에 빠지곤 한다. 친구관계가 갖는 위대한 힘은 같이 놀고, 같이 일하고,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삶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에 있다. 새로운 가족은 공통된 가치와 삶의 서사를 나누는 우정과 동지의식을 통한 공동체 모델에서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캡틴 판타스틱>은 바로 그런 공동체적 가족의 모델의 영감을 선물한 인상 깊은 영화다.

김정운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 한다>에서 자신이 아내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한 비결이 바로 가족 ‘리츄얼’(Ritual)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리츄얼, 즉 종교적 의식은 단순히 전통적인 가족예배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김정운 교수에게 그것은 커피와 함께 듣는 베토벤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리츄얼을 구별한다. 그는 말한다.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다고. 오늘날 가족의 붕괴를 말하기 시작한 그 때에 우리네 가족은 바쁜 일상을 핑계로 리츄얼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비싼 선물과 회식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같이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삶의 서사와 구별된 가족 리츄얼 말이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니 한 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5월이 되면 많은 교회가 이 찬송을 부른다. 믿음의 가족은 그저 같은 종교를 가진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믿음의 서사와 리츄얼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가족의 달’이라고들 하는 5월에 의무감에 치르는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 ‘리츄얼’을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같은 취미를 공유한 친구들과 같이 수다 떨며 그 일을 같이 행할 때였던 것 같다. 가족 간에도 이런 공통 관심과 취미가 있어야 한다. 같은 책을, 같은 영화를, 같은 음악을 나누고, 함께 봉사도 하고, 음식을 먹고, 더 나아가 그것에 대해 솔직하게 토론(?)하는 활동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내가 꿈꾸는 가족은 바로 그런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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