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정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 역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동양철학자 공자와 맹자에서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이르기까지 정치에 대한 수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치가 우리의 삶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류의 지성인들이 남겨 놓은 정치에 대한 견해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요?
 
피조 세계에서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정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생겨나게 된 원인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했습니다. 이것을 위임통치라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정치는 시작됐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정치를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타락이라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원리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은 창조 세계를 무질서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더욱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여기에 정치는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됐습니다. 창조에 주어진 정치의 목적에는 변함이 없지만 타락한 후에 더더욱 정치가 중요하고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에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어서 그의 나라를 회복해 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정치에서 떠날 수 가 없습니다.
 
셋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항상 함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변에는 항상 가난하고 힘든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성도의 자세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참된 경건이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것이 바로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바로 여기에 정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있습니다. 정치는 이웃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 철학적으로 공공선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공공선은 바로 이웃사랑이 가져온 열매입니다. 정치는 이렇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이웃사랑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정치는 안하지만 가정과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발상도 사실은 합당하지 않은 자세입니다. 정치적 행동이 없이 우리의 가정과 이웃을 돌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는 구분해야겠지만 정치 그 자체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넷째는 국가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정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사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국가의 존재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국가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직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모델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현대 국가의 모습을 통해 발전되었습니다. 국가의 존재는 우리가 정치적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정치에 대한 균형과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을 분별하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질서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성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정치적 행동에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나 자포자기나 냉소적 자세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 합니다. 무질서한 사회에 성경의 가치가 잘 드러나도록 감당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를 뽑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임권을 바르게 사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바른 정치인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독재 국가도 아닌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가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른 지도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많은 내용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성경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소명이 분명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권력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의지가 있어야 정치를 감당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소명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천명이라고 말합니다. 바른 지도자의 자세에는 이러한 정치적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권력의지를 통하여 명예와 부를 축적하고, 정적을 죽이는 일을 위하여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바른 지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하여 현실 정치인으로 살게 하였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그의 재능과 관계없이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는 정직한 정치인이 되어야 합니다. 정직은 매우 평범하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정직한 지도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목마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한 모습을 가진 정치인이 지도자가 될 때 그 민족이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정치인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 민족은 소망이 없습니다. 사기, 폭행, 음주운전 등과 같은 전력이 반복된 사람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정직한 지도자를 볼 수 없는 민족은 참으로 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직한 정치인을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는 탐욕과 싸우려고 애쓰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정치인은 탐욕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정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힘들 수 있지만 이러한 악과 싸우려고 분투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명의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탐욕을 제어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인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탐욕과의 싸움에서 이긴 지도자는 역사가 기억합니다.
 
넷째는 국민을 존중히 여기는 지도자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배자의 권위를 행세하려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러한 정치인은 시정잡배와 같은 사람입니다. 소명은 없고 오직 권력의지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으면 온갖 추태를 남발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자신의 종 부리듯 대합니다. 이러한 지도자는 더 이상 권력의 자리에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국민을 존중히 여기는 지도자를 바르게 분별하고 뽑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섯째는 실천 가능한 공약과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합니다. 당선되기 위하여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정치인은 가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정말 국민을 사랑하고 국가를 고민하는 정책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책은 곧 삶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잘 살피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섯째는 샬롬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아야 합니다. 샬롬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더더욱 이러한 샬롬이 필요합니다. 남북이 대치되고 국론이 분열된 이러한 상황 가운데 샬롬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가진 지도자가 뽑힐 때 나라는 평안하고 국민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정치적 지도자를 잘 선별하여 투표해야 합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적 위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온 책무를 바르게 선용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