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재 교수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통일에 대한 열정과 기도가 뜨겁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필자가 많은 교회와 기독교 대학들이 추진하는 평화통일 프로그램에 자문활동을 하면서 깊이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통일에 대한 열정은 좋은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남북의 평화통일에 헌신하는 데 있어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째는 '상대방의 관점'이라는 원칙이다.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꾸리듯이, 통일도 서로 다른 남과 북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과정이다. 남북의 통일에는 상대방이 있다는 매우 기본적인 이야기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일이라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좋아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한 배우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거기서 커다란 불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통일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마다 먼저 물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북녘의 형제자매들은 무어라 생각할까. '상대방의 눈'에 나의 의도와 행동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결여되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일도 일방적인 폭력이 된다. 남과 북은 '남'이다. 서로가 '남'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영영 '남남'이 된다. 분단 70년이 넘은 남과 북은 지금 '남'이다. '타자'다. 우리가 남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상대가 나와 다른 타자라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것을 한국교회가 잊고 있다.
 
두 번째로 한국교회가 잊고 있는 원칙은 '평화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좋은 것이지만 통일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통일의 목적은 평화이고,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도 평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통일,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필자가 매우 놀라는 사실은 '평화'에 대해서는 거의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화로부터 분리된 통일은 위험하다. 평화를 잊은 통일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통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 평화라는 점, 그리고 한반도 통일의 목적은 한반도와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항구적인 평화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한국교회가 잊고 있다.
 
세 번째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잊고 있는 한반도 통일의 원칙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남북의 통일은 사반세기 전 동서독이 이룩한 통일의 재현은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북의 통일은 동서독의 통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류의 새로운 희망과 생명의 길을 여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많은 통일단체들이 겉으로는 평화적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독일 식 흡수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남북의 통일은 남한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북으로 확장하고 이식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둘이 만나 '둘 다' 어떤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까지 이룬 우리나라가 매우 자랑스럽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이 체제를 고스란히 북으로 확장하고 이식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은 북도 새로워지고 남도 새로워지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지구상 인류 전체는 동서독 통일 때와는 달리 커다란 생태적 · 문명사적 위기를 겪고 있다. 전 세계인이 피부로 느끼는 기후변화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서 일어나야 할 통일은 과거 독일의 모델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파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 전체 앞에 새로운 생명의 길과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독일보다 한반도의 통일을 늦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필자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일보다 더 멋지게, 더 훌륭하게 화해의 기적을 이루는 일에 부르신 것은 아닐까. '새 하늘과 새 땅'(이사야 65:17)을 창조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 전체를 새로 지어 열방 앞에 구원과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본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발송하는 평화칼럼으로 평화통일연대 홈페이지(http://www.cnpu.kr/44)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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