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진정한 고스트는 어디에?

영화 <공각 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과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성 찾기

윤영훈 소장(빅퍼즐문화연구소)

등록일:2017-03-30 19: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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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도대체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라는 정통교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고전적인 교리는 이미 문장 자체 안에 논리적인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아리우스 논쟁, 그리고 여기에서 풀리지 않았던 그리스도 안의 인성의 문제로 인한 네스토리우스 논쟁은 초대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신학논제였다.
▲빅퍼즐문화연구소 윤영훈 소장 ⓒ데일리굿뉴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이제 새로운 신학적 논의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그것은 “도대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페미니스트 학자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사이보그 메니페스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시대, 이 신화적 시대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들, 즉 이론화되고 가공된 기계와 유기체의 혼종들이다; 우리 모두는 사이보그들이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 그녀의 말처럼 기계와 네트워크로 탄생한 포스휴먼 시대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진다. 이제 기독교 지성이 마주한 가장 심각한 논의은 ‘신 존재 증명’에서 ‘인간 존재 증명’으로 옮겨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논의를 뜨겁게 만드는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일본 만화 원작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다. 1995년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너무나 어둡고 난해해 당시 고작 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참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기한 철학적 문제의식은 지금까지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명작으로 추앙되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이 작품은 헐리우드에 의해 엄청난 시각적 화려함을 덧입혀 SF 블록버스터로 재탄생됐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자 더욱 큰 화제를 불러오며 골수팬들의 가슴은 더욱 설레였을 터다.

영화를 본 이후 내가 느낀 감정은 볼거리에 함몰된 주제의식에 대한 아쉬움이다. 특히 원작의 철학적 깊이까지 재현해 내지 못해 많이 아쉽다. (감독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재대로 이해하기는 했나라는 의심도 든다.) 제목이 말하는 두 단어, ‘고스트’는 인간의 자아와 정신을 의미하며, ‘쉘’은 인간의 육체 또는 기계화된 장치를 의미할 것이다. 즉 원작이 관객에게 제기한 질문은 ‘인간다움’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모든 특성을 기계가 대치할 때에 인간됨의 본질은 무엇인가이다. 그러나 헐리우드 판은 그 ‘고스트’의 본성을 인간 고유의 ‘기억’으로 축소시켜 버린다. 새롭게 주입된 기억이 아닌 삭제된 본래의 기억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마치 제이슨 본처럼 말이다.

단지 기억일까? 일찍이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론적 회의론에서 내가 지금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모든 환경이 악마의 조작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철학자의 기본자격으로 제안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는 인간 주체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이성적 의식(consciousness)라고 결론짓는다. <공각기동대>의 원작이 제기한 “고스트”는 이러한 이성적 의식을 넘어선다. 어짜피 ‘뇌’라는 신체기관 역시 의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기계일 뿐이니까. 신학자 박일준에 의하면 포스트휴먼 담론에서 인간은 “육화된 실제성보다 탈육화된 정보”에 기초해 기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모습 속에서 인간 정체성의 핵심인 인간의 의식과 정신은 "물리적인 하드웨어에 기반한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세계를 매개로 사방으로 연장되어(extended) 나가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된 자아를 꿈꾸었다면 (고후 5:17), 현대 문명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탈육화한 새로운 피조물로 진화되길 소망한다.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기보다 기획되고 변화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서브젝트(subject)가 프로젝트(project)가 되었다. 이것을 흔히 동력혁명, 정보화혁명을 넘어선 제 3차 미디어혁명으로서의 ‘이식혁명’이라 부른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신체는 기계와 결합하고, 정보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컴퓨터나 인터넷과 연결된다. 나아가 생명공학을 통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되길 원한다.

원작의 주인공은 바로 그 인간다움의 고유성에 대해 질문한다. 만일 그 인간성을 인간 안에 유추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것을 찾아야 할까? 극장판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인 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전차로봇이 자신을 희생해 숭고하게 자폭하면서 신의 이름을 부른다. 이 인공지능이 마침내 소유하게 되는 ‘고스트’를 사이보그화된 인간은 점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결국 우리는 인간성의 본질을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한 대로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내 고스트가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내 고스트의 진정한 안식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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