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목사
2006년 3월 29일은, 남측의 대북지원 물품이 파주에서 개성으로 뱃길이 아닌 뭍길로 최초로 전달된 아주 역사적인 날이다. 남측 민간단체와 교회가 북한에 못자리용 비닐 3천만 평을 대형 트럭에 직접 싣고 개성으로 가서 비닐을 직접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남측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 개성에 가서 개성 봉평역에서 온종일 비닐 하역작업을 지켜보았다. 북녘 땅 초봄의 바람은 무척 차가웠으나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향한 꿈이 있어서 내 마음은 참으로 따뜻했다. 하역 후 잠시 둘러본 개성시내, 명색이 북한의 3대 도시로 일컬어지는 도시 한 복판에 커다란 목각 바퀴를 끼운 소달구지가 마구 돌아다니던 낙후된 풍경이 아직 생생하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려 있었고 개성공단이 비교적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남북간 접점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평화적으로 다시 하나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벅찬 기대가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전주열린문교회 교우들과 함께 대북지원사업에 힘을 쓰는 한편, 금강산 관광길 뿐만 아니라 묘향산 관광길도 열리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북녘 땅에 계속 세워질 수 있기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새벽마다 내내 기도해왔다. 우리 기업들이 바다 건너 중국까지 건너가서 물건을 만들어 들여오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북녘으로 들어가 제품을 만들면 가격 경쟁력도 훨씬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고, 남측의 기술과 북측의 인력이 결합하면 평화통일의 디딤돌도 훨씬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군 주둔지였던 개성을 북측에서 군을 철수시키면서까지 공단부지로 선뜻 내어놓은 이유는, 거기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도시 서울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개성공단은, 수많은 공단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꿈과 노력의 위대한 상징이며 역사적 이정표다.
 
<개성공단 사람들>의 공동저자 김진향 교수는 "서울 시민들이 입고 있는 옷의 60~70%가 개성공단 제품"이라는 말을 한 적 있다. 박근혜 정권이 대북제재 차원에서 느닷없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켜 마침내 공단이 폐쇄되고 말았는데, 박 정권의 이 조치는 엄밀히 말해서 대북제재가 아니라 대남제재의 한심한 자충수였다는 말이다. 개성공단은 임기 5년의 일개 정권이 함부로 닫아버릴 수 없는 민족사적인 가치를 엄청나게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 동안 베이징에서, 평양에서, 평안도에서, 황해도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 동포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 갈라선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남과 북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 없이 서로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엄연한 한 민족이다. 북한 동포와 함께 북녘 땅을 거닐 때, 잠시 감시의 눈이 소홀해지면, 살아온 날들, 소소한 자식들 이야기로 얼마든지 서로 살갑게 다가설 수 있는 형제 자매들임을 거듭 확인했다. 잠시 만났다 헤어질 때마다, "통일 되면 꼭 다시 만나자. 통일 되면 평양에서, 전주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뜨거운 포옹으로 주고 받았다.
 
지난 10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사의 이 귀한 발걸음을 한없이 후퇴시키고, 한반도를 또다시 싸늘한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친박 세력들은 어김없이 해묵은 "종북-좌빨" 프레임을 동원하면서 낡은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내두르고 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이 분단의 장벽을 속히 평화적으로 허물지 못하는 한, 남쪽이든 북쪽이든 우리 민족이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아예 없다는 뚜렷한 증거다. 이 분단의 벽을 허물지 않는 한, 끝없는 '분열 프레임'으로 사리사욕만을 챙기려는 정치꾼들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민족의 밝은 내일을 위해 개성공단은 속히 다시 열려야 한다. 금강산 관광길도 다시 열려야 한다.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서로 만나야 한다. 제2, 제3, 제4의 개성공단이 더 세워져야 하고, 바다 건너 외국으로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북녘으로 앞다투어 들어가는 의미 있는 흐름이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남북의 찢어진 살이 조금씩 조금씩 한 살이 되어야 한다. 평화통일은 그렇게 꾸준히 준비되고 시작되어야 한다. 부디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 대업이 이루어져,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평화의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정말 자랑스런 조상이 되고 싶다.


*본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발송하는 평화칼럼으로 평화통일연대 홈페이지(http://www.cnpu.kr/44)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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