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규 칼럼] 배신도 뒷탈도 없는 오직 '복된 길'

이민규 교수(한국성서대학교)

등록일:2017-02-17 17: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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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교수ⓒ데일리굿뉴스
우리 신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내적 치유, 재정적 번영과 영적 권능을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혹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주님을 경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통해 잘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요? 잘되고 싶은 것이야 인간의 당연한 욕구입니다. 그러나 늘 변하고 사라지는 변덕을 부리면서 행복을 보장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들에 속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권력, 사람들의 인정, 성공, 쾌락 등이 그런 것이지요.

이런 것들에 빠지면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주인 노릇을 하기에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을 공간이란 실제로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것에 빠진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섬긴다고 말은 하지요. 겉으로야 경건할지는 몰라도 그들의 삶은 위선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맘몬과 하나님은 함께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필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상업화되는 것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고백하는 많은 기독교인도 이해관계가 걸리면 마음 속의 숨은 동기를 드러냅니다.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막상 돈과 명예와 권력이 그들의 주인이 됩니다. 목회자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목회가 정치적이고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봅니다. 기독교 출판사도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하는 책보다, 회사에 돈벌이가 될 책에 우선권을 두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선임을 강조하지만, 신앙과 성공을 모두 가지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봅니다.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변하면 안 됩니다.

유대 신비주의자 헤쉘은 성경에 관해 “(고대)그리스인들은 이해하기 위해서 배웠고 (고대)히브리인들은 경외하기 위해 배웠으며 현대인은 사용하기 위해서 배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을 만한 복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행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들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갈망하던 재정적인 복이나 세상의 성공이 사라져도 “괜찮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궁극적인 복입니다. 이런 신앙을 배우는 것은 기나긴 영적 순례의 여정이 요구됩니다. 부흥회 같은 곳에서 단번에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단숨에 배울 길이란 없습니다. 인생 문제, 신앙문제 한방에 될 수 있다는 약속은 모두 사기라고 보면 됩니다.

누구나 이 길을 가게 되면 말할 수 없이 고되고 수없이 방향을 잃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강퍅한 심령이 깎여 나가는 아픔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동행하며 손 잡아 주시고 성령님의 은혜가 부어지기에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고 누구에게나 복된 길입니다. 사실, 쉬운 길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 길을 가면서 욕망을 따라 살다가 배반당하고 심히 고통 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길이 훨씬 쉽고 가벼운 길입니다. 배신도, 뒷탈도 없습니다. 오직 복된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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