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운 변호사
2,000년도 초반, 중국동포 여성 한 분께 법률상담을 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생 고생하여 모은 돈을 남한 친척이 빌려간 후에 나 몰라라 하니, 국가에서 그 돈을 돌려받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민법이 어떻고 형법을 적용하려면 저렇고, 나름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지만, 그 중국동포 분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니, 내 돈인데, 친척이 돌려주지 않고 있으니, 그 돈 받아서 돌려주면 되는 것이지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그 분과 법률상담을 하면서, 평소에 남한 고객들한테 한 것과 똑같은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상당히 자본주의화 되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공산당이 하는 일이 법률로 해결되는 것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제야 그 분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천천히 설명을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 이후에 만난 세계 각국의 동포들과도 좀 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비록 동포이지만, '외국인'이고 나와는 다른 국가, 심지어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분들이니 그에 맞추어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법적인 처우와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북한동포도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외국인처럼 대하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남한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는 북한 혹은 북한동포를 대할 때, 민족 동질성만 강조한 나머지 '같지 않음'을 탓하고 심지어는 '같아야(만)한다'고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분명히 한민족, 같은 동포이지만 다릅니다. 미국, 호주, 유럽에 사는 동포들보다도 더 다릅니다. 해방 이후 긴 세월을 주체사상과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왔으니,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 아래 살아온 (거리상) 먼 나라 미국이나 유럽의 동포보다도 (심리적으로 체제적으로) 더 멀고 더 다릅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 한반도의 바로 윗부분에 38선이라는 살을 서로 맞대고 살고 있지만,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나온 말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간관계, 국제관계에도 통용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는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형성된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통일한국, 평화한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통일된 평화한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현재의 남한 체제만으로 충분한가요? 물론 현재 상태로 만족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평화통일을 이루었을 때에는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분명히 북한이, 북한동포가 우리와‘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북한동포를, 탈북이주민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미 다 알고 있나요? 그렇다는 대답을 쉽게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편합니다. 상대방이 내 기대나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다르니까 그러겠지" 마음이 편하고 보다 쉽게 이해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2017년은 '다름'을 인정한 연후에 '같음'을 추구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 서로 뭐가 같아야 하는지를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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