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의 인기는 엄청났다. 시청률뿐 아니라, 각종 패러디와 광고는 물론이고 특히 드라마 OST는 쟁쟁한 뮤지션들의 신보들을 넘어 음원차트를 초토화시켰다. <도깨비> 인기의 비결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 등 인간의 생로병사와 밀접한 각종 민담 캐릭터들을 현대적으로 멋지게 재해석한 작가적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빅퍼즐문화연구소 윤영훈 소장 ⓒ데일리굿뉴스


1990년대 이후 급부상한 판타지 문화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문화 트렌드다. 문학계와 영화, 드라마에서는 지속적으로 수많은 판타지물을 제작하고 있어서 그 예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 장르 역시 대하 서사부터 시공을 초월한 로맨스, 그리고 호러물과 가벼운 코미디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런 판타지 콘텐츠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판타지 문화의 시대적 조류와 트랜드를 어떻게 평가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판타지를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먼저 노골적인 반기독교적 요소만 없다면 단순한 오락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거나, 판타지물 자체에 대해 경계하고 정죄하며 거부하는 극단적 입장이 있다. 단순한 수용과 비판에 앞서 우리는 이런 판타지 문화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잘 살펴봐야 한다. 도대체 왜 오늘과 같은 첨단 정보 통신과 과학의 시대에 이런 허황된(?) 이야기들이 큰 호응 속에 난무하는 것일까?

판타지 문화는 우리가 살고 경험하는 세상이 결코 이성과 합리성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자각을 일깨워준다. 사실 판타지는 인간에게 내재된 고유의 심리현상이며 인류 문명의 고유한 스토리텔링 양식이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이나 <날아라 수퍼보드>와 같은 애니메이션과 <최유기>와 같은 게임 프로그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사오정 시리즈'의 우발적 생활 유머는 모두 동양의 고전 <서유기>라는 문화원형의 현대적 파생물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천로역정>과 비교되기도 하는 고전 <서유기>를 이교도적 주술 문화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또한 민족의 기원설화와 민담과 전설은 자연물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판타지 또는 신화의 형태로 전해져 왔다. 이러한 판타지적 문화원형들은 사회 구성원의 세계관과 관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며 공동체성을 마련하는 순기능이 있다. 이러한 판타지를 근원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울러 이러한 비현실적 동화를 통해 아이들은 꿈과 창의력을 발달시키며, 현실 너머의 상상의 힘을 키워가고 열린 공간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이런 동화의 비현실성을 자각하며 더 이상 판타지를 접하지 않는다. 결국 동화를 잃어버린 어른들은 현실 안에 종속되며 비전을 상실하고 일상에 함몰되는 결과에 빠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판타지 자체보다는 판타지 문화가 내포하는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고 일러주는 윤리성을 비판의 주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기독교 가치관에 입각한 비평과 토의가 보다 활성화되도록 함으로써 문화 자체에 종속되는 것은 경계하고 문화의 상상력은 습득하는 균형 있는 자세가 요청된다.

살아있는 나무에 불이 타오르고, 지팡이는 뱀으로 변한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사람들을 인도하고 바다가 갈라진다. 노래와 함성에 견고한 성벽이 무너지고, 사람이 병거타고 하늘로 승천한다. 사람이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나귀는 말을 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살아있고, 까마귀가 양식을 물어다 준다. 사람이 물위에 서서 걸어다니고, 변화산에 죽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사자들은 양들과 뛰놀고, 하늘에 사람도 아닌 짐승도 아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가 떠다닌다.

역사성과 과학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판타지를 이야기하며,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 왔다. 성서의 상상력의 세계는 현실에 종속되어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을 너무나도 경이로운 판타지로 초청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현실과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분명한 현존과 그분을 신뢰하며 현실을 극복하고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의 보고인 성서를 우리는 너무나 도덕적인 규범과 지성적 텍스트로만 대하는 모더니즘의 한계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창조과학과 강해설교를 넘어 성서가 안내하는 거룩한 판타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

어릴 때부터 모세의 하나님이 보여주신 판타지를 듣고 배우고 암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눈앞의 골리앗의 거대한 현실에 상상력을 잃어버린 채 절망했다. 그러나 한 소년만큼은 자신이 들어왔던 그 판타지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눈앞의 골리앗 뒤에 보다 거대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현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그분이 보여주시는 상상력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담대히 달려나갔고 힘차게 맷돌을 던졌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영웅을 통해 자신들의 잃어버린 상상력을 회복했다.

이처럼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독교 문화 콘텐츠는 단순히 성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성극을 뛰어 넘는다. 성서 이야기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캐릭터, 그리고 새로운 상황 속에 재구성하고, 그 안에 성서가 전하는 세계관과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금단의 선악과’ ‘출애굽 내러티브’ ‘메시아적 구원’ 등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세속 문화 콘텐츠 안에서도 자주 재현되는 문화 원형이다.

기독교 문화는 이전에 예수님이 복음의 진리를 일상적 우화와 스토리로 들려주셨던 것처럼, 또한 루이스와 톨킨이 지신들의 작품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을 통해 표현했던 것처럼,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건강한 세계관과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꾼(storyteller)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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