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두 팔을 잃게 된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두 팔을 잃었지만 의수로 그림을 그리며 세계 최초로 '수묵 크로키'를 창시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석창우 화백이 그 주인공. 그는 두 팔을 잃고 삶이 뒤바뀌었다며, 하나님이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성경필사에 도전하고 있는 석 화백을 만나봤다.
 
 ▲석창우 화백은 두 팔을 잃었지만 의수로 그림을 그리며 세계 최초로 '수묵 크로키'를 창시했다. 2015년부터는 성경필사를 도전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석창우 화백 인생 바꾼 네 살배기 아들의 "그림 그려줘"
 
전기기사로 일하던 30대 젊은 가장 석창우 화백에게 1984년 10월 29일 2만 29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인해 석 화백의 두 팔은 까맣게 타 들어가고 발가락 두 개는 절단됐다. 이후 석 화백의 두 어깨엔 플라스틱 의수가 끼워졌다.
 
석 화백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수술과 재활치료의 시간을 보내던 중 네 살배기 아들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말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뒤바꿔 버렸다.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림책을 펴 독수리와 참새 등 동물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석 화백이 그린 그림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정작 두 팔이 있었을 때 몰랐던 재능을 두 팔을 잃고 나서 발견하게 된 것.

석 화백은 아내와 친척들이 그림을 배워보란 권유에 화실 이곳저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두 팔이 없어 물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단 이유로 화실에서 거부 당했고, 먹물 하나만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서예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화실을 돌아다니며 다른 취미를 알아보란 말까지 들었었어요. 그러던 중 처제가 여태명 선생님을 소개해 줘 서예를 배우게 됐죠. 여태명 선생님도 처음에 찾아 뵀을 때 고개를 저으시더라고요. 그래도 선생님께 무작정 가르쳐달라고 매달리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오기로 시작했지만 의수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의수의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돼 있어 붓을 잡기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붓에 구멍을 뚫고, 발로 먹을 갈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올림픽 폐막식 퍼포먼스…"하나님과 동행했기에 가능했죠"
 
석창우 화백은 날을 새는 것은 물론 피땀을 흘려가며 서예에 몰두했다. 서예로 새롭게 시작된 그의 삶은 성공적이었다. 서예를 시작한 지 3년이 되던 1991년 전라북도 서예대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서예대전,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 등 곳곳에서 상을 휩쓸었다.
 
석 화백의 집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연히 김영자 교수의 누드 크로키 강의를 들은 후 사람의 움직임을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는 '크로키' 기법에 빠져들었다. 당시만 해도 연필로 크로키를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먹을 활용하는 사람은 없어, 석 화백은 동양의 먹과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시킨 '수묵 크로키' 기법을 창시하게 됐다.
 ▲석창우 화백ⓒ데일리굿뉴스
 

특히 지난 2014년 3월, 소치 장애인겨울올림픽 폐막식에 올려진 석창우 화백의 퍼포먼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두 팔이 아닌 의수로 짧은 시간 안에 올림픽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단 2분 내외에 그리며 자신의 기량을 온 세계에 전했다.
 
사실 소치 장애인겨울올림픽 폐막식 퍼포먼스는 석 화백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폐막식 퍼포먼스 시간이 8분 정도로 계획됐다가 2분 40초로 갑자기 줄어든 것.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란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몇 차례 리허설을 해봤지만 2분 내외에 완성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올림픽 현장에 가기 전 예배를 드리는 데 '주와 동행하면 된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능치 못함이 없다'란 확신을 갖게 됐어요. 소치에 도착했을 때도 계속 '저와 동행해주세요'를 외치며 기도했죠. 그 결과 주어진 시간보다 3초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었어요."
 
"성경필사가 제 삶의 1순위 됐어요"
 
요즘 석창우 화백은 성경필사에 빠져있다. 2015년 61살이 되던 해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25m 두루마리 화선지에 성경필사를 하고 있다. 어느덧 시편을 넘어 잠언을 쓰고 있다.
 
"손 있이 30년, 손 없이 30년을 살았는데 남은 삶을 뭐하며 살지 고민이 들었어요. 고민을 하다가 성경을 읽어본 적은 있지만 필사를 해본 적이 없단 생각에 성경필사를 시작하게 됐죠."
 
큰 그림만 그려왔던 석 화백에게 작은 글씨를 쓰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석 화백의 그림은 더 정교해졌고, 정교해진 그림처럼 그의 신앙도 더욱 커졌다.
 
"성경을 읽으며 필사를 하니 마치 제가 성경 속 인물이 되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은혜가 저에게 전달되는 것 같더라고요. 성경필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묵상하고 깨닫게 됐어요."
 
양 팔 없이 어느덧 30여 년을 살아온 석 화백은, 자신의 두 팔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기적을 엿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하루하루 살아가며 하나님의 기적을 몸소 경험하고 있어요. 슬픔과 두려움만 가득했던 저의 삶이 두 팔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더 멋지게 변화됐죠."
 
석 화백은 앞으로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성경필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완성된 성경필사는 전시 등을 통해 예술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가볍게 시작했던 성경필사가 이제는 저의 삶의 1순위가 됐어요. 그래서 완성된 성경필사는 한 곳에 모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저의 성경필사 작품을 보면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석창우 화백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성경필사를 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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