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악한 정부라도 복종해야 하는가?

조종건 사무총장(평택샬롬나비, (사)한국시민교육연합 사회통합위원장)

등록일:2017-01-24 18: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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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건 사무총장ⓒ데일리굿뉴스
문맥의 이해가 없는 문구 해석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democracy)를 일컬어 “이따금 시도된 모든 다른 형태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부(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from time to time)”라고 말했다.
 
처칠이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부라고 비판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문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처칠의 주장은 '다른 모든 형태의 정부는 민주주의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탁월성을 주장한 내용이다.
 
요즘 문맥에 대한 고려 없이 해석한 성경 구절이 로마서 13장 1절~2절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사악한 정부일지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극우 기독교인의 시각이다. 이러한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인데 어떻게 탄핵으로 하나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느냐고 일부 극우 성향의 목회자들은 순진한 교인들을 설득한다.
 
이에 동조하는 극우 기독교인들은 광화문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면서 태극기를 흔든다.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도 이에 가세하거나 동조한다. 심지어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주도하는 이들도 있다.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권세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할 당시의 맥락이 중요하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내용은 로마제국의 권력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의 선교여행을 방해하고 공격했던 사람들은 동족인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지 로마의 지도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로마법의 도움이었고 로마정부였다. F. F. 브루스도 ‘바울 자신이 로마법을 체험한 좋은 경험’ 즉 합리성 있는 로마법을 언급한다.
 
또 로마서는 기독교 핍박 이전에 기록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지도자보다 로마의 합리성이 더 낫다는 바울의 정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4절에는 통치자인 “그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라는 언급이 있다.
 
극우 기독교 리더들의 말처럼 사악한 왕이나 공포를 조장하는 정부책임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세 가지 면을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첫째, 마가복음 12장 17절에서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한 예수의 말씀이다. 여기서 ‘가이사의 것’이란 세금에 관한 것이지 하나님의 정의를 짓밟는 통치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사도행전 5장 29절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증언이다. 위임된 통치자 위에 진정한 통치자인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의 가치에 맞춘 통치에 사도들은 협력하겠다는 의미이다.
 
셋째, 성서본문을 각 시대 상황에서 해석하고 실천한 그리스도인들의 고뇌에 찬 사례들이다. 일제시대에 3.1운동을 이끈 양대 세력이 천도교와 기독교다. 만약 사악한 왕에게 복종을 거부한 것이 하나님의 명을 거스른 것이라면, 당시 일본 천황 참배에 대해 복종을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일까? 유신시대에 하나님의 정의의 이름으로 저항한 크리스천들은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할 수 있나?
 
저항권은 교회의 유익한 가치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1483-1546)는 루터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라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명령에 단호히 거부했다. 최초로 신구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윌리엄 틴들(1494-1536)은 의미심장하게 왕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어길 것을 명령하면 순교를 달게 받을 각오로 불순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가 존 낙스(1514-1572)는 “정부의 권세에 복종해야 하지만 통치자가 불법을 행한다면 무장 반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장로교도 위그노에 대한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 이후 칼빈의 후계자 테오도르 베자(1519-1605)는 “모든 폭정에 백성들은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1776년 영국왕 조지 3세에게 저항했던 영국식민지 미국의 선조들, 특히 청교도들의 반란으로 미국독립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행위도 잘못된 믿음인가? 정당한 투표로 당선된 히틀러의 나치 체제에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1906-1945)는 하나님을 모독한 행위자인가?
 
독일 나치 위기의 시기에 미국 동료들이 본회퍼에게 영주권을 마련해 주려고 했지만 이를 기꺼이 포기하고 히틀러에게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것이 개죽음이라면 본회퍼에 대한 모멸이요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흑인 인권운동의 중심에 섰던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는 정부에 맞서 비폭력 시위를 했다. 흑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인권운동의 결실을 미국의 한인 교포들도 누리고 있다.
 
실낙원의 저자이며 세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칼빈주의자 존 밀턴(1608-1674)의 고뇌에 찬 통찰력을 한국교회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 되새겨보자.
 
“나는 나의 양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시저에게 양도할 수 없다.” 진영논리에 앞서 신구약성서가 가르치는 사회정의의 보편가치를 위해서라면 저항권은 교회의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한국교회에 사회정의를 위한 저항권이 자리 잡을 때, 제2의 종교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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